영등포역으로 고속철도를 타러 온 건 처음이다.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를 지나친 경우는 많지만, 영등포역에서 내려 케이티엑스로 갈아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기둥에 적힌 안내를 따라갔는데, 연결 통로는 공사 중이었다. 기차를 놓칠까 두려워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우선 ‘나가는 곳’을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에 대기하고 있던 긴 복도는 1,2,3번 출구와 4,5,6번 출구를 양옆으로 쭉 뻗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실하지 않아 또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1,2,3번 쪽 복도 바닥에 붙은 분홍색 화살표 속 케이티엑스란 글자를 발견했고, 그제야 교통 카드를 찍고 나왔다. 철도역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출발 시간 전이었다.
오늘은 외갓집에 가는 게 아니라, 할머니를 뵈러 간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라는 이유로 외갓집에 가는 게 아니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단둘이 만나기 위해 대전에 간다. 일종의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까? 고속버스를 선호하는 우리 가족과 동행하지 않은 덕분에,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고 치익- 지하철 문보다 작은 문이 열렸고, 나는 가볍게 기차 계단을 올랐다. 좌석번호 ’12A’를 찾았고, 의자에 앉아 가방을 뒤적였다. 가방 속에서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꺼냈다. 러시아에서 그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재밌게 봤기에 이번 신작도 망설임 없이 샀다. 책 크기가 손에 딱 맞다. 좋다.
원래는 할머니와 막내 이모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함께 보기로 했다. 근데 오늘 아침 이모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만나기 힘들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고, 잠깐 고민했다. 할머니와 둘이 시간을 갖는 게 처음인지라, 대전을 갈지 말지 …. 아마 카를로 로벨리가 설명한 다세계에서의 ‘또 다른 나’는 가지 않았겠지만, 막내 이모가 했던 말이 떠오른 ‘지금의 나’는 대전으로 출발했다. “그보다 살아 있는 존재에 집중해 봐”. 연초가 되면 청주 이모의 기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청주 이모에 대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생각이 가장 깊어졌을 때 막내 이모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이 대답을 들었다. 결국 그 문장이 오늘 내 고민을 불식시켰다. 말을 한 당사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도착하기 15분 전 잠깐 눈을 붙였다. 감았던 눈은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오기 전에 저절로 떠졌다. 고속버스였다면 눈을 두세 번 떠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텐데…. 교통수단의 차이가 아니라 심적으로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옛날보다 대전까지 가는 길이 편하고 짧게 느껴졌다. 옆에 걸어뒀던 목도리를 두르고, 곧이어 도착 안내 방송이 들렸다. 기차에서 내려 대전역 앞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택시 문을 열고, 기사님께 아직도 나에게 익숙한 <선비마을 3단지>로 가달라고 했다. 단지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렸을 때, 아파트들은 20년 전 내가 살던 때와 다름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최근에 색칠했는지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였다.
20년 전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하고, 살던 집 마저 누군가에게 빼앗겼다. 복구를 위해 아버지는 노력했고, 그동안 어머니, 나, 동생은 여기 선비마을 3단지 속 할머니 댁에서 1년 넘게 얹혀살았다. 나는 급하게 전학을 왔음에도 나름 새 친구들과 잘 지냈다. 때때로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진원이, 외삼촌네서 얹혀살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런 기억은 왜 이리 안 지워질까. 아무튼, 그때처럼 오늘도 엘리베이터는 18층에서 멈췄다. 초인종을 눌렀고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왔네! 왔어, 금방 왔네, 택시 탔어?”. 목소리가 여전히 짱짱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이야기를 몇 분 나눴다. 그러다 순간 할머니가 주방에 가서 무언가 요리할 거 같은 기운에 나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할머니에게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 물었더니, 할머니는 요즘 소화가 잘 안된다며 샤브샤브가 좋다고 대답했다. 집에서 샤브샤브 음식점까지 십 분 정도 걸렸고, 걸어가는 동안 아까 못한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나를 향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연락 잘 해라, 외삼촌한테도 연락 자주 하고, 동생들한테 잘해라 와 같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는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운 법칙 같다. 머릿속에 있지만 꺼내 쓸 일은 적다. 시험처럼 문제가 눈앞에 있을 때만 꺼내 쓰는 것이다. 다만 할머니는 문제 있을 때 말고 평소에 쓰라는 말이었다. 카를로 로벨리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면 일상을 매번 다르게 보게 된다고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나.
식사를 마치고 가는 곳을 여쭸다. 할머니는 집이 아닌 노인정으로 가신다고 했다. 요새는 노인정이 잘 되어있다며, 국가가 노인들에게 잘한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국가‘가’ 아니라 국가‘도’ 잘해준다 였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가족들이 잘해주고, 국가도 잘해주고 처럼. 문득 아까 들은 당연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할머니는 89세인데도 또래에 비해 똑똑한 편이라고 하면서 90세가 되기 전엔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순간,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 같아진다는 말과 아이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참고, “할머니도 효심이네 보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즐겁게 효심이네 본다 대답하고는, 첫째는 어쩌고, 둘째는 어쩌고, 그 집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자식들한테 자꾸 무언가 부탁하면 안 돼 등등 줄줄이 이야기를 늘어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네, 할머니 똑똑하십니다. 기억도, 말도 아주 잘하십니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내 눈앞에 <해피존>이라는 상가가 보였다. 나는 놀라서“해피존 아직도 있네요?”라 물었다. 할머니는 그럼! 그리고 너가 좋아하는 햄버거집도 아직 있어, 너 햄버거 좋아하잖냐 라고 했다. 내가 햄버거를 좋아했었나? 평소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 햄버거는 맞지만 좋아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먹기 편한 음식이라 선택한 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릴 적 나는 햄버거를 좋아했단다. 그랬구나, 그래서 햄버거를 자주 먹는구나.
“할머니 진짜 똑똑하시네요”. 이번에는 입 밖으로 생각을 꺼냈다. 나조차 잊고 있던 나의 한 부분을 기억하고 계신다. 그리고 문득 두려워졌다. 20년 전에는 저 짱짱한 목소리를 가진 할머니의 존재가 무서웠는데, 지금은 언젠가 할머니가 존재하지 않게 될 거란 사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때가 오고, 그때가 지나면, 할머니가 나의 햄버거를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할머니를, 또 할머니의 작은 부분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할머니처럼 똑똑하게. 그리고 우리는 노인정에 도착했고, 다음 달에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일부러 나는 더 아무렇지 않게 휙 돌아서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가야지, 다음번에 아무렇지 않게 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버스는 대전역에 도착했고, 나는 영등포행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을 찾아 앉고, 다시 가방에서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꺼내 읽었다. 아까 읽던 다세계가 쓰인 부분을 지나 110쪽이 되었을 때, 이런 문구를 마주쳤다.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은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영등포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에 눈을 떴다.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막내 이모한테 메시지가 와있었다. 방금 할머니랑 통화했는데 요전 몇 달과 다르게 목소리가 하이텐션이라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