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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원의 초고들 Sep 24. 2023

유효기간이 길어질 선물

올해 생일선물은 없다. 정확히는 선물 받은 카카오톡 기프티콘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선물을 받을 수가 없다. 2년 전 카카오톡 등록번호를 +82가 아닌 +7로 시작하는 러시아산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작년에 친구가 기프티콘을 선물하려는데 내 프로필에 선물하기 버튼이 사라진 걸 발견했을 때, 그제야 나는 기프티콘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 선물함은 텅 비어있다. 그 이전에 받았던 선물들도 이미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지났다.


그렇다고 카카오톡이 조용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축하 메시지는 온다. 선물이 없는 대신 친구는 이전보다 더 길어진 메시지를 보낸다. 또 한국에서 러시아 뉴스가 어떻게 나오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정세 덕분에 평소 연락을 안 하던 친구에게서도 메시지가 온다. 좋지 않은 상황 때문에 더 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는다니 요상하다. 마냥 기뻐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은 따뜻해진다. 카카오톡 선물함이 아닌 마음이 채워진다. 유효기간은 기프티콘보다 조금 더 길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이 생기고 나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확실히 쉬워졌다. 나도 기프티콘 하나를 친구에게 보내며 ‘생일 축하한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을 전하고 서로 몇 마디 안부를 더 나눴다. 깊이 있는 대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은 보다 편했다. 그런데 마음을 전하는 일이 이렇게 쉽다는 게 좋기만 한 건가 싶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호감을 전하는 일도 한 달을 필요로 하는데, 버튼 한 번으로 선물을 보내니 괜히 진심이 핸드폰 터치만큼 가벼워 보였다.


오늘은 기프티콘이 사라진 자리에 그만큼 길어진 메시지가 공간을 메운다. 친구는 매번 보내던 선물을 보내지 못한 어색함에 더 긴 메시지를 보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만큼 깊은 진심을 받았다 말하고 싶다. 버튼 한 번으로 보내던 선물이 아니라, 버튼을 여러 번 눌러 텅 비었던 입력창을 한 글자씩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 화면도 데워졌을 것이고, 그 덕에 나도 따뜻해졌다. 시간을 들인다고 모든 유효기간이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따뜻하게 오래 유지되는 것은 분명히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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