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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Sep 26. 2022

삶이 원래 그런 건가보다

10대엔 29살에 굉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흔히들 꿈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이루고 있는 사람. 그게 직업이든, 돈이든 여타 다른 것이든 말이다. 현실은 첫 직장이 생각보다 더 맞지 않았던 탓에 반년만에 퇴사한 '이 00군 29세(무직)'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누구나 미래에 도달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고3이었던 나는 대학생의 나를 꿈꿨고, 입대를 할 때엔 군인일 때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제대를 하고 졸업이 다가올 즈음엔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꿈꿨다.


시간이 흐를수록 꿈꾼다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졌다. 대학생활은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대학 내의 인간관계는 쉽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3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던 10대와는 달리 대학교엔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 지방에서 상경한 친구, 예체능을 하다 온 친구, 다른 학교를 다니다 온 친구.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 보수적인 가치관을 고집하던 친구와 그렇지 않았던 친구.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지만 깊은 관계를 유지하긴 힘들었다. 대부분의 만남은 술자리로 이루어졌다. 술을 잘 못 마시고 술자리 특유의 시끄러운 장소를 싫어했기 때문에 대학교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깊은 관계를 유지하진 못했다. 대부분의 교우관계는 술자리에서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덕분에 동기들 사이나 선후배 사이에서의 가십 따위는 졸업할 때까지 알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기 때문에 술값 역시 만만치 않았다는 걸 느낀 이후로는 술이 취미가 아닌 몇몇 동기들과 다니거나 혼자 학교생활을 했다. 


돌아보면 그때 시간과 돈을 소비해서라도 교우관계를 이어나갔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마 다시 돌아가도 그러진 못할 것 같다. 누구나 각자의 캠퍼스 라이프가 있었겠지만 사람 만나는 걸 즐기고 음주가무에 능한 사람들이 보기엔 나의 캠퍼스 라이프는 집에서 먹는 미역국 느낌일 테다. 심심한 간에 아침으로 먹기 딱 좋은.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엄마가 "넌 대학교 동기나 선후배 없니?"라는 질문에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예 없진 않다. 그렇지만 자주 연락하거나 시간을 보내진 않는다. 1년에 연례행사처럼 본다고 할까. 소위 대학교 '인맥'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겐 그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나라서 비슷한 생활을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말고도 삶은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다. 비교적 휴가가 많고 일과 제라는 메리트가 있어서 지원한 공군에서는 일과제를 할 수 없는 '헌병'으로 가야 했다. 헌병으로 간 것도 모자라 선임들에게 욕을 대차게 먹으면서 K-311 트럭을 몰아야 했는데 이때 '삶은 정말 생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구나'라고 느꼈다. 나름 계획형 인간이긴 했지만 내일 일과를 정하는 귀여운 계획 말고 인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흐름 앞에서는 나름 거시적인 계획들은 찢어지고 고쳐지기 일수였다. 졸업 후에도 역시 비슷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전혀 전공과는 1도 관련 없는 일에 관심이 생겨서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을 배우고 나서는 패션회사 MD로 취업했다(?) 이 역시 취미활동을 했던 것들로 만든 조악한(?) 포트폴리오가 눈에 띄어 합격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아니었으니 바닥부터 배우자는 심정으로 일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일과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트러블이 가장 어려웠다.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 사수가 장난이라고 말하며 하는 일상적인 폭언들은  '원래 처음은 다 이러는 건가?'라고 입사부터 퇴사하는 날까지 초년생에게 자문하게 했다. 동기 포함 다른 경력직 분도 동시에 퇴사 의사를 밝혔던 걸 보면 나만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 같진 않았다. 1년은 버텨서 경력을 만들라는 사람들의 충고보다는 남은 6개월을 더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에 퇴사했다. 올해 가장 잘 한 선택중 하나라고는 생각한다만, 여전히 방황하는 나의 29살은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것도 일을 하는 동안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부지런을 떨어보자고 다짐하는 중으로 첫번째 아홉수 기록을 남긴다.




2022.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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