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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Jan 25. 2023

네게 엉엉할 수 있도록

엉엉/김홍/민음사

★★★☆


본체들이 떨어지다


표정 없는 형형색색의 볼링공이 그려진 표지가 맘에 들었다. 영풍문고나 교보문고도 아닌, 내가 가장 자주 가는 종각역 서점의 소설 코너에 진열되어 있었다. 재고는 1권. 게다가 제목이 ‘엉엉’이라니 얼마나 신선했던지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다. 엉엉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이야기일지 아니면 그저 은유에 불과한 제목일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본체가 떨어져 나간 ‘나’로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영혼이 떨어져 나갔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본체는 나랑 똑같이 말도 하고 밥도 같이 먹는 인간이다. 시작부터 참신했다. 본체는 ‘나’를 떠나 5년 만에 연락을 하고 ‘나’는 본체들이 떨어져 나간 ‘우리들’을 만난다. 나는 ‘본체들의 밤’을 준비하는 한편, 동사무소에서 우연히 광고를 보고 찾아간 ‘슬픈 사람들의 모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슬사모’에는 자신의 눈과 코 입이 떨어져 나가서 얼굴이 텅 비었다고 말하는 ‘동그람’씨가 있다. 그는 본체가 떨어져 나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본체, 우리들, 슬사모, 나의 관계 속에서 서사는 본체들의 밤을 기점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본체들의 밤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고 ‘나’는 경찰 조사를 받는다. 본체는 없어지고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린다. 그가 눈물을 흘리면 하늘에도 비가 내린다. 멈추지 않는 울음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침수시켰고 한국의 모든 주민등록기록이 말소된다. 도입부에 있는 참신한 설정들과 예상치 못한 전개는 ‘허허’하게 만들다가도 다른 의미로 ‘엉엉’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 시절 노동에 대해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참신함과 난해함을 넘나들었다. 쿠팡의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고양이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쿠팡 이츠 라이더는 노동자성을 부여받고, 쿠팡은 로켓배송을 하지 않았다. ‘나’는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공장의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일이 없으니 잘렸다가 일손이 부족하니 다시 나간다. 박정현 씨는 대형병원 주차관리요원 계약직으로 일하다 쓰러진다. 원인을 알 수 없이 쓰러진 그는 진단명을 받을 수 없었고 진단명 없이 산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김지수 씨는 가게에서 일했고 사장은 CCTV를 통해 가게를 감시했다. 그는 출퇴근할 때 발을 헛디뎌 본체가 빠져나갔다. 누구는 본체의 연락을 받고 상태가 나았고 누구는 아니었다. 


책을 덮었을 때, 참 표지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표정 없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볼링공을 볼 때 본체가 빠져나간, 혹은 본체를 찾고 있는 우리들이 떠올랐다. 내게서도 노동은 그랬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고 말을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말이 ‘일부만 맞다.’고 생각했다. 화이트칼라 전문직 부모님 사이에서 학비를 지원받고 해외를 자주 오가며 술자리엔 빠지지 않는 사람이 말했기 때문이다. 책이랑 담을 쌓고 지내던 녀석이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 한 권 읽고 나서 친구 인생에 훈수를 두는 느낌이었다.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했던 노동은 좋은 경험 쪽보다는 ‘안 하면 살 수 없으니까’ 해야 하는 경험에 가까웠다. 대부분은 육체노동이거나 서비스직이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지만, 불가피하게 모멸감을 겪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최저임금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임금으로 술자리는 사치였고 학점이라도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체력이 방전되어 퇴근하는 버스 안의 내 모습은 흡사 표정 없는 볼링공 같았을 테다. 하고 싶은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생존투쟁을 이어 나갔던 그 시절, 내 본체도 잠시 나갔다 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노동에 있어 좋은 경험과 잊고 싶은 상처들은 선물세트처럼 같이 왔다. 그리고 상처가 아무는 데엔 좋은 사람들이 최고의 약이었다. 마치 ‘슬사모’의 동그람씨처럼.


     

번번이 져도 괜찮다.



우리는 지고 있어요.” , “그래도 비는 멎었잖아요.” “어차피 여름 되면 장마가 또 와요그래서 슬픈 사람들한테 모이자고 한 거예요여러 사람이 모이면 힘이 생기니까.”

     

“ 이번에 졌어도 다음에 이길 수 있어요저는 그렇게 믿어요

     

축구에도 로스타임이 있고 승부차기도 있잖아요.… 우리 같이 참호를 파요.” 193P


동그람씨가 ‘나’와 말하고 엉엉 우는 부분에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정말 어렵지만 끝내 그들과 함께 엉엉할 수 있을 때 혼자보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책의 중반까진 ‘엉엉하는 순간이 올 수 있는 걸까.’라고 의심했었다. 그러나 진부할 수도 있는 대사지만, 저 부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작년 가을과 겨울에도 많이 위로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한 인터뷰 기사의 제목에서 시작한 그 문장은 내가 마음속에 넣고 두고두고 볼 문장이 됐다. 좋아하던 선수가 우승컵을 드는 순간을 봤고 극적으로 한국 축구가 월드컵 16강을 갔다. 누군가에겐 그냥 게임이고 공놀이일지라도 그 순간의 감동과 위로는 계속 내게 남아있으니 그걸로 됐다. 뻔한 말처럼 위로라는 게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에서 벗어나기


소설의 두 집단 중 본체의 ‘우리들’보다 ‘나’와의 거리가 먼 동그람씨의 ‘슬사모’가 끝내 ‘나’와의 우정을 지켜 낸다는 강보원 평론가의 글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쓴 김지혜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우리’는 ‘그들’을 전제로 할 때 배타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그리고 폐쇄된 집단으로서의 ‘우리들’ 이 아닌 수많은 우리 ‘들’이 교차하고 만나는 연대의 관계의 ‘우리들’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질문한다. 강보원 평론가 역시 저자 김홍이 ‘우리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평을 남겼다. 나 역시 남이기에 친구가 될 수 있고 우리‘들’이 만날 때 함께 엉엉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물론 현실은 아직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나 울음은 멈췄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해 나가는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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