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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Mar 26. 2023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흰'이 고통이 될 때

흰/한강/문학동네

★★★★




짧지만 무거운 책이었다. 군인 시절 선물로 받은 책이었고 그때 책장을 열었을 땐 그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것이라는 것은 내게 일차원적인 것들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색깔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나, 깨끗함과 순수함 같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것들. 길진 않은 책이었기 때문에 그냥 읽었다. 병장 마크를 달았을 때 남는 건 꽤나 많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엔 제대로 '흰' 것에 대해 느끼지 못했었다. 대부분의 글귀를 기계적으로 읽어내기만 했을 뿐.


나이의 앞자리가 달라졌을 때 다시 책장을 펼쳤다. 적당한 분량과 무게를 가진 책이었고 대중교통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내게 서둘러 집을 나설 때 집어든 책이었다. 강보, 소금, 눈, 백지.. 수의 흰 것들의 목록과 그것들에 관한 글들이 이어진다. 전혀 기승전결이 없는 소제목과 글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방식이 더 매력적이었다. 흰 것들과 아이의 죽음, 각각의 흰 소재들은 끊어진 것 같다가도 끝내 같은 흰색 페인트통으로 합쳐지는 느낌(?). (채식주의자 때부터 한강 작가의 작품은 뭔가 읽고 나면 표현을 못하겠다.) 굉장히 아름답지만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색이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책 안에 있는 해설처럼 의미를 분석하고 설명할 깜냥은 안 돼서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오랜만에 글을 '느끼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내 삶의 흰 부분에 점점 때가 타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처럼 살아갈수록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이 아닌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있는 흰 여 가깝게 살아가야 할 테고 여전히 그 '흰'것을 마주하는 것은 두렵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흰'것을 계속 마주 보며 살아내야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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