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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라야노을 Mar 11. 2023

남아있는 나날의 스티븐스와 트루먼쇼의 짐 캐리

3인칭 시점으로 본 가즈오 이시구로의 메시지

진정한 독서는 책을 덮은 뒤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은 '남아있는 나날'을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 아닐까 싶을 만큼 적절하다.

책 중반부를 넘길 때까지만 해도 위대한 집사란, 위대한 신사란, 아버지의 집사시절 등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을 간신히 읽어가고 있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수많은 생각들이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으며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무엇이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기 보다는, 우리의 삶과 시대적 소명에 대해 스스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념이 인생을 지배하면 벌어지는 일들

지독하고 고독한 시공간

위대한 신사를 만나고 재능을 받쳐 섬김으로써,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하는 것이 위대한 집사로서의 완성된 삶이라고 믿고 있는 스티븐스.

그런 숙명은 아버지로부터 세습되었지만,  아버지가 완성시키지 못했던 몇 가지 숙제들이 더해져서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고독한 외길인생을 걷게 다.


하루의 시간은 오로지 집사의 임무수행으로만 채워지며, 일과를 마친후에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 이유도 아버지에게 부족했던 언어 구사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위해 정확한 위치에 존재해야 하기에, 켄튼이 가져온 작은 꽃병 하나가 그 사이를 비집고 놓이는 것조차 불편하다.


고립되는 인생

스티븐스는 만찬 행사를 치르는 중에 아버지의 위급함을 알게 되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도 만찬회장을 떠나지 못하고 괴로워만 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홧김에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켄튼을 보며 잠시 흔들린 순간도 있지만, 떠나는 켄튼을 끝내 외면한다.


신념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하고, 크고 작은 불행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돼주기도 하지만, 신념이 인생을 지배하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감정표현과 선택의 의지를 억누르고 인생을 점점 고립시킨다.


인생이 신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신념이 인생을 위해 존재하도록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놓쳐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자아


스티븐스의 극단적인 경직성과는 다르게, 켄튼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매 순간 적절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주체성과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스티븐스의 아버지를 돌보고, 의사를 부르고, 임종을 지키는 것도 켄튼이었다.


달링턴 경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녀들을 해고하려 할 때도, 스티븐스는 부당한 결정임을 알면서도 아무런 항의없이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는 반면, 켄튼은 분노를 표출할 뿐만 아니라,  사표를 던지고 저택을 떠나겠다는 강한 저항의 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켄튼의 이런 소신 있고 당당한 모습이 스티븐스의 비루함을 자극시켰던 것 같다. 나중에, 스티븐스가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켄튼에게 비아냥거리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던 자기자신과 큰 소리는 쳤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켄튼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확인하고싶은 소심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왜 아직까지 그만두지 않았냐는 스티븐스의 비아냥대해서도, 켄튼은 자기의 결정을 합리화하지 않고 깨끗이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스티븐스를 더욱더 당황시킨다.

 "네, 저는 떠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갈 곳이 없고, 가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떠나는 것이 두려웠어요. 저는 비겁합니다."

결국, 스티븐스는 소심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켄튼을 위로한다.

"아닙니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신사로 섬겨오던 달링턴 경이 히틀러와 나치의 부역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몰락한 후에도 스티븐스는 저택에 남아 새로 온 주인의 집사가 된다.  

여행의 말미에 스티븐스가 만났던 낯선 이의 말처럼 저택과 함께 일괄품목이 되어 넘겨졌을지도 모르지만, 저택을 떠난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스티븐스는 스스로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고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켄튼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것,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그리고 자기를 내려놓을 수있는 용기 같은 것들은 스티븐스가 내면 깊숙히 억누르며 살아온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행하는 동안 스티븐스는 신념의 허상을 깨닫게 되고, 놓쳐버린 사랑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자아이기도 한 켄튼과 마주하게 된다.



여행은 변화된 삶을 향해 내딛는 첫발

새 주인은 저택에서 일만 하는 스티븐스에게 아름다운 산천을 돌아보며 여행할 것을 권하지만, 이미 저택 안에서 영국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아왔다고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주인이 바뀌는 격동의 상황 속에서도 저택을 떠나 본 적이 없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켄튼의 편지이다.

달링턴 저택에서 지내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켄튼의 편지는 그 옛날 집사로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게다가, 켄튼이 저택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저택이라는 세상에 갇혀있는 스티븐스가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오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트루먼쇼의 짐 캐리와 달링턴 저택의 스티븐스

문제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문제의 원인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저택을 나선 스티븐스는 비로소 저택에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6일간의 여행에서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 점점 움츠려 들고, 집사라는 직업에 당당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며, 허망한 인생 앞에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자동차를 타고 달링턴 저택을 나서는 스티븐스의 모습은 마치 영화 트루먼 쇼에서 섬을 떠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의 문을 열게 되는 짐 캐리의 모습과 닮았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하듯이, 여행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늙은 수사자의 품위
(달링턴 경의 몰락은 영국의 자화상)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영광스러운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는 무리에서 밀려난 늙고 힘없는 수사자를 영국에 비유할 때가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과거 속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깨에 힘만 주고 있는 영국을 풍자하려는 것이다.


니들이 품위를 알아

세계대전 전후에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의 핵심인사들이 저택에 모여, 여러 날 동안, 먹고, 마시고, 음악을 즐겨가며 유럽의 미래를 걱정하고 세계의 평화에 대해 토론을 나눈다. 미국인에게는 이런 모습이 세상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탁상공론으로 느껴졌는지 바깥세상의 변화를 좀 제대로 보라고 충고를 날린다. 그러나, 달링턴 경은 너희들이 이해 못 하는 그 아마추어의 태도가 바로  '품위'라는 것이라며 점잖게 일갈해 버린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달링턴 경은 몰락하였고, 저택은 미국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과거 식민지 정복 시절에 넓은 영토를 가지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패권은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이동하였다.  


품위를 강조하려는 순간, 품위는 이미 품위가 없다


저녁이라는 시간의 의미
눈물의 의미

여행이 모두 끝나고 켄튼마저 떠나보낸 저녁에, 스티븐스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린다.

스티븐스가 자책하는 것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그의 인생속에 선택과 결정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인생이라 판명되더라도 최소한 그 길을 선택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선택"한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농담과 남아있는 나날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좋은 때이고, 하루의 일을 끝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즐길 시간이다.

스티븐스는 전등이 켜진 선창으로 저녁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농담을 이해하는 것은 책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열쇠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나온 날들에 후회만 가득하다 해도, 남아있는 날들을 살아갈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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