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오페라다

3.1 Sydney Opera House - 역사, 건축 그리고 예술

by 시드니 이작가

마흔이니 아저씨라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몸의 나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 30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쯤 되면 소주 한 잔에 어울리는 인생의 이야깃거리가 하나씩 있다. 사업했다 실패를 했을 수도, 사랑을 했다가 상처를 받았을 수도, 몸이 심하게 아팠었을 수도, 어쩜 벌써 명예퇴직의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누가 불혹이라 하였는가? 이제는 자기중심의 세계관에서 아픔을 통해 성숙해졌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관심 있게 돌아보기도 하고 드라마의 이야기에 눈물이 나는 항상 유혹받는 인생의 중반이다.


마흔이 되어서야 통기타 소리가 좋은지 알게 되었고, 커피와 와인의 향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림을 보며 맘의 용기와 감동을 받기도 하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 소중한지 더욱 깨닫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절에 태어나서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격하게 공감하고 김광석을 추억하는 동시대를 살았던 40대에게 시드니의 가을로 안내한다.


오페라하우스가 없는 시드니는 어떤 모습일까? 물론 오페라하우스가 없어도 본다이 비치의 파도는 항상 출렁이고 시드니항의 파아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은 항상 우리를 반길 것이다. 그러나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기에 오늘 관광대국 호주가 있고 많은 분들이 시드니를 찾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드니에 오는 어떤 일정이라도 오페라하우스가 빠질 수가 없다. 물론 자유시간을 갖거나 내부 투어를 하기도 하고 공연을 보기도 한다.


교민으로서 가이드로서 오페라 하우스를 얼마나 자주 많이 보았겠는가? 처음 골드코스트에서 유학생일 때 시드니 와서 오페라 하우스를 보니 마냥 신기했었다. 친구의 생일이어서 동네에서 피자와 맥주를 포장해서 버스를 타고 오페라하우스의 야외계단에 앉았다. 이미 차갑게 딱딱해진 피자와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며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영주권도 받아서 멋지게 오페라 바에서 파티하자며 다짐했던 추억도 있다


나중에 첫 직장인 DFS 다닐 때는 진주빛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출근하고 오렌지빛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퇴근했다. 다짐대로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바에서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추운 겨울 비비드 축제할 때, 한 여름 연말 불꽃 할 때, 한국에서 가족들 왔을 때, 나의 좋은 날에는 항상 오페라 하우스가 함께 있었다.


검색하면 나오는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적인 아름다움과 UNESCO에 등록된 세계 유산 같은 정보와 이미지로 서가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 와이프를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공연을 보러 가고 손님들과 칵테일을 마시며 항상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오페라하우스가 참 좋다.


그런데 오페라하우스가 처음부터 사랑을 받으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1950년대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남북은 갈라지게 되고 사람들은 죽고 굶주리고 국토는 황폐화되었을 때다. 호주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승전국이 되어 외화도 많이 벌게 되어 경기도 좋을 때여서 기존의 예술공연장인 시드니 타운홀을 대신할 문화예술공간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1956년 총리 조 카일 (Joseph Cahill)이 창의적인 건축을 표방하며 공모전을 열었다. 전 세계 32개국 232개의 작품이 NSW 주립 미술관에 속속히 도착을 하였다. 당시의 기술로 건축이 불가능해서 탈락되었던 38세 덴마크 출신의 이외른 우촌(Jørn Utzon)의 설계안이 고심 끝에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으로 선정이 되었다.


그러나 설계안에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많은 여론과 전문가 집단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도면은 개략적 아이디어 수준이었고, 설계비용도 산출하지 않았고, 심지어 구조 공학자의 구체적인 협의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건설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구심이 아주 컸던 것이다. 그래서 우촌은 구조 공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 그리고 예술적 영감을 위해 남미 유적지를 여행하며 꿈을 더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5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는 3단계로 진행했는데 일단 1단계는 바닥과 계단공사이다. 사암의 지반층에 20미터 콘크리트 말뚝 400여 개를 박아서 지반을 고정을 시켰다. 멕시코의 아즈텍, 마야 문명의 신전에 영감을 받아 계단을 만들었다. 6 번째 공연장인 야외광장에서 공연을 할 때 계단은 훌륭한 의자가 되기도 하고 오페라 하우스를 올려다볼 수 있는 또 시드니항을 또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예술적인 무대 장치가 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2단계 공사는 상징적인 지붕을 만드는 것이다. 곡선으로 된 하얀 지붕을 만드는 게 건축공학적으로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밀한 계산을 하였으며 유명한 오렌지 얘기가 여기서 나온다. 구형인 오렌지를 까면서 하나의 조각조각이 오페라하우스의 지붕 모양인 것이다. 일단 덴마크의 레고(Lego) 블록처럼 콘크리트로 블록들을 만들고 그 안에 철근을 통과시켜 끝에서 잡아당기는 형식으로 콘크리트 블록들을 조립하고 곡선의 형태로 세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106만 장의 스웨덴 타일로 마감이 된다. 가까이에서 타일을 보면 두 가지 색깔인데, 반짝반짝 광이 나는 흰색과 무광택의 베이지색 두 가지이다. 그래서 맑은 날은 햇빛이 비쳐서 반짝반짝 하얗게 보이고, 구름이 낀 날은 은은하게 베이지로 보인다. 날씨, 시간과 계절에 따라 자연의 모습을 닮아있는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심플하면서 자연에 어울리게 변화무쌍한 모더니즘의 표본이다.


여기까지가 1959년 착공하여 우촌이 호주를 떠난 1966년까지 7년간의 일이다. 당시 호주의 여론이 공사 완공일이 계속 연기가 되고, 건설비용 역시 예산에 비해 10배 이상 오르다 보니 논란이 많았고, 결국 당시 우촌을 지지해주던 카힐 총리(Cahill)가 이끄는 노당당 정부가 선거에서 패하고 야당으로 되어버렸다. 하버브릿지에서 오페라하우스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카힐(Cahill Express) 익스프레스이다.


또 예산절감을 위해 디자인을 수정하고 건축 일정을 선거일에 맞춰 서둘러라는 외부의 압력이 거세졌을 때, 사업가가 아닌 예술가였던 우촌의 입장에서는 타협 없이 사퇴를 하고 호주를 떠난다. 그 이후로는 자신의 청춘과 사랑이 담긴 오페라 하우스를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하게 된다.


총 건축감독인 우촌의 사임으로 공사는 중단되고, 부족한 예산 역시도 큰 문제였다. 부족한 예산은 복권(lotto) 사업을 통해서 다시 충당하기 시작하였고 호주의 건축가인 피터 홀(peter hall)이 맡아 3단계 내부 공연장의 공사를 마무리 짓고 드디어 1973년 10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오프닝을 하며 사연 많은 15년의 공사는 마무리가 된다.

공연장은 총 6개가 있다. 가장 큰 대공연장은 2,500석 규모의 콘서트 홀다. 1년에 두세 번 연주된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파이프 오르간은 조율하는데만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내부는 음향을 위해 떡갈나무로 만들어졌고 온도는 23.5도로 유지된다. 정형외과 의사가 디자인하여 인체공학적 의자 역시 아직 건재하다. 한국 가수들도 공연을 자주 오는데 페티김을 시작으로 세시봉, 김범수, 박정현, 이승철, 신승훈까지 왔었다.


그리고 1,500 석 규모의 소공연장은 전설적인 시드니 출신의 소프라노인 조안 서랜드 (Joan Sutherland, 1926-2010) 이름으로 불리며 오페라 전문극장이다. 그리고 우촌에게 헌사하는 스튜디오는 존 올센(John Olsen)의 작품과 시드니항이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공연장이다. 그리고 아래층에 극장과 소공연장, 야외공연장까지 하면 총 6개의 공연장에서 오페라뿐만 아니라 뮤지컬, 관현악단, 발레 등 연간 1,200회의 공연을 하며 매년 120만 명이 찾는다.


초창기의 예산보다 10배 정도 더 많은 1억 2천만 호주달러 (한화 990억 원)으로 총 15년이 걸렸으나 지금은 20세기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찬사와 함께 2007년에 UNESCO 건축물 유산으로 지정이 되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한분이 나에게 "오페라하우스는 입구가 어디에 있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질문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놀이공원이나 문화예술공간을 보면 담장을 따라서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하지만 오페라 하우스는 문이 없다. 베네롱(Bennelong) 포인트라고 하는 시드니항에 돌출된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서 페리를 타고 가면서, 강 건너 노스 지역의 마을에서, 하버브릿지를 건너면서, 보태닉가든에서도 잘 보인다.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호주에 살면서 좋다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빈곤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체감이 덜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많건 적건 누구나 보고 올 수가 있다. 꼭 음악, 공연을 좋아하지 않아도, 휠체어를 타거나 몸이 조금 불편해도, 현지인이 아니거나 처음 왔어도 차별 없이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즐길 수가 있다.


그러니 미리 오페라하우스의 홈페이지를 통해 좋은 공연들을 예약해서 멋지게 정장, 드레스를 입고 공연도 보고, 하버브릿지와 하늘의 별이 시드니항에 반짝거리며 갈매기들도 통통하게 아름다운 바에서 시원한 맥주나 칵테일을 즐기고 가족들과 애기도 하고 여유 있게 나만의 특별한 오페라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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