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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이작가 Aug 21. 2023

내 나라 여행 #2 산청

지리산이 품고 있는 처갓집 

*시드니이작가는 7월 11일부터 8월 2일까지 한국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여행을 마치고 호주 시드니로 돌아와 바쁘게 일하며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스스로 내 나라여행 3편까지는 쓰겠다고 숙제를 내어서 뜨겁고 습했던 여름의 한국을 다시 회상하며 한자씩 써 내려갑니다. (벌써 3주가 지나서 써질까 싶었는데 써집니다. 내 기억인지 나의 기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기가 나옵니다.



맴, 맴, 맴, 이놈의 매미소리는 진짜로 우렁차다. 도시 아파트가에는 밤에 시끄럽다는 민원 때문에 살충제로 많이 죽여 이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지리산 자락이야 있는 거라고는 물, 나무 그리고 하늘이니 민원 넣을 사람도 없다. 있는 사람도 다 늙어서 돌아가시고 매미소리에 신경 쓸 젊은이가 없다. 오히려 계곡에서 장마기간 내린 비로 바위를 쓸어내려오는 물소리에 묻혀 매미소리가 희미해질 정도이다. 


맴, 맴, 맴, 요렇게 잘 우는 거 보니깐 정말 한국에 왔구나 싶고, 이 소리는 30년 전 내가 코 찔찔 흘리고 사탕 빨아먹던 꼬맹이시절에도 들었던 소리요, 쌀농사 짓던 우리 할배가 생각나는 소리이다. 그때도 이렇게 울었다. 맴, 맴, 맴, 


나도 할배보고 싶다. 맴, 맴, 맴

내가 할배가 되고 있다. 맴, 맴, 맴 

15년 기다렸다가 한철 우는 매미처럼 청춘이 찬라이다. 맴, 맴, 맴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서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따라 10분 더 올라가면 유평마을이라고 있다. 산아래 첫 동네라고 하는데, 청학동처럼 유명하지 않고 크지 않아서 산꾼들과 동네사람들만 아는 지리산 자락에 폭 안겨져 있는 마을이다. 

우리 가족이 잘 가는 집은 조개골산장인데, 닭백숙 한 마리 70,000 원하는데 한약재에 푹 삶긴 육질이 부드럽고 간도 잘 배어 한 점씩 뜯어먹기도 좋다. 이 집의 별미는 따로 있다. 바로 지리산 나물과 약초들이다. 쌉쌉한 두릅, 명이가 짜지도 달지도 않은 간장에 잘 절여서 나오는데 어디가도 이런 약초 못 먹는다. 닭집에 가서 닭보다 반찬이 맛있다면 욕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난 닭고기보다 약초에 하얀 쌀밥 한 그릇 하고 싶을 정도이다.   


해발 700미터에 터를 잡아 닭고기를 뜯고 있으면 구름도 지나가고, 바람도 지나가고, 천왕봉에서 치밭목대피소 쪽으로 내려오는 산꾼들이 지나간다. 여기 계곡에서 예전에는 산 조개를 잡았다고 해서 조개골산장인데, 가을에는 말할 것도 없이 빨간 단풍이 절경이고, 여름에는 초록이 아주 싱그럽다. 나만 알고 싶은 식당이나 이 글을 읽어주시는 소수의 구독자님에게만은 공개한다. (소수라서 감사합니다.)

한낮의 더위를 대원사 계곡에서 흘려보내고, 허기는 닭배숙이 채워줬고 이제 숙소를 한번 추천해 봐야겠다. 이것도 특별히 소수의 구독자님을 위한 혜택이다. 산청 IC에서 10분 거리인 동의보감촌이다. 한방호텔과 콘도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필봉재, 왕산재라는 한옥까지 열어서 인원수, 모임성격에 따라서 선택지가 늘어났다. 대가족이라 보통 방 3개짜리 콘도를 빌려 먹고 자고 노는데, 이번에는 애기 있는 조카가족들도 와서 한옥을 하나 더 빌렸다. 


우리 가족은 필봉재라는 한옥에 묵었는데, 방 2개에 거실이 있고 마당이 딸린 독립형 한옥이다. 평상에 앉아있으면 뒤로는 필봉산이 앞으로 산능선이 굽이굽이 섬진강처럼 흐르고 있고,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딱 해발고도 500미터에 있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산들바람이 내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준다. 겨드랑이도 뽀송뽀송해지고 저 멀리 산허리와 구름을 보고 앉아서 밤새 도란도란 얘기하고 애들은 마당에서 곤충도 잡고 담벼락 위에 까치발을 해서 산아래를 볼 수 있다.  


방은 2개에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있고 주방은 구들장에 무쇠솥이 아니라 서서 싱크에 쿠쿠 밥솥이 밥을 찰지게 잘해주고, 에어컨도 방마다 설치되어 있다. 또 창호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쑤셔놓아도 구멍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아주 두꺼운 이중창인데 방음, 단열이 훌륭하니 "호텔의 기능에 한옥의 옷을 입혔다고 해야 되나." 하튼 아주 훌륭한 한옥이다. 

아침에 새소리에 잠을 깨서 동의보감촌 뒷산 필봉산을 산책해도 좋고 아래 한수금 식당에 가서 약초비빔밤을 한 그릇 때려도 좋다. 허준의 스승 유의태의 고향인 만큼 쌉쌉하고 내가 평소에 안 먹는 약초로 만든 비빔밥이니 추천한다. 또 우리 처남이 운영하는 식당이라 한수금에 가서 시드니이작가의 글 읽고 왔다고 하면 특별히 구독자 혜택이 있을 거라 믿는다. 


지리산 자락의 산청은 나의 처갓집이기도 해서 나의 한국여행의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하다. 근처에는 수선사라는 아름다운 비구니 사찰도 있고, 274km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아름다운 길이 있기도 하고, 방목리 카페, 중산리의 풍천장어집, 단성의 향어집 그리고 시드니이작가의 처갓집이 있는 물 좋고 공기 좋은 마을이다. 


여러분도 산청 한번 오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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