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찌집 찾아가는 아재들의 하루
고등학교 1학년 1994년부터 친구였고 2023 지금도 친구인 이진행(학성고 26회)과 동네형님 박복기(학성고 17회) 그리고 나 이채룡(학성고 26회), 세 아저씨가 당일치기로 통영으로 간다. 양산 동네 실비집에서 술 먹을 때마다 "통영 다찌집 가자고 가자고" 주사를 부렸는데 진짜 간다. 통영!!
양산에서 통영을 가려면 부산을 거쳐 거가대교를 지나게 되어있다. 한국 토목공학기술의 정수라고 불릴만한 거가대교를 비싼 통행료 (중형차 15000원)를 내고서라도 달려야 된다. 6년에 걸쳐 2조 원의 예산을 들였고 부산에서 3시간 30분 걸리는 거제를 40분으로 단축시켰다. 대우건설의 홍보자료에서 나온 글을 인용하면 " 교량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자세한 것은 EBS 다큐프라임 원더풀사이언스 - 세계 신기록 5개의 첨단 건설공학 거가대교! (2009년 11월 19일)를 시청하세요.
여하튼 술 먹고 싶어서 통영으로 가고 있지만 아재들은 이런 공학, 기술, 역사, 정치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얕은 지식을 서로 다 꺼내놓고 함께 까고 씹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거가대교에 감탄을 하던 중, 저도의 박정희 별장 얘기를 하고, 또 복기형은 진해 여자랑 벚꽃 보러 간 얘기를 한다. 연애 잘 못하는 경상도 남자의 풋풋한 첫사랑 얘기이다. 별 실속은 없다.
거제에 들어서서 문재인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얘기가 한 번씩 나왔고, 정치얘기가 슬슬 나오며 혈압이 높아져서 창문을 한번 열어 환기도 시켰다. 높아진 열기도 빼고 오늘 정치 얘기도 빼기로 했다. 2시간 차에서 알쓸신잡 같은 잡다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통영이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 그러니만큼 그 바닻빗은 맑고 푸르다.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굴 양식장이 있고 조선소를 지나니 언덕에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언덕 위의 자리 잡은 집에서 창문을 열면 비릿한 바다내음과 조선소의 기름냄새가 매서운 바람에 실려 코등을 때릴 것 같다. 시드니 같은 낭만보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처럼 보인다. 여기는 통영이다.
점심때가 되어 서호시장으로 갔다. 처음부터 시래깃국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다찌집에서 낮술 먹으려 했으나 오후 4시에 오픈한다고 해서 우연히 걷다 보니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광경인데 샐러드바처럼 긴 테이블의 중간에는 반찬이 스스로 골라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멸치젓갈, 부추 그리고 각김치는 비린내가 향긋하다.
"어랏 여기 뭐지? 완전 대박 맛집이다."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차가운 새벽에 일 나가기 전에 따뜻하게 시래깃국으로 배를 채우던 곳이다. 통영은 역시 항구였다. 억센 뱃사람처럼 거친 아재 세 명이 허겁지법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 막걸리랑 든든히 먹었다. 허기는 떨어지고 취기가 올라 정신을 잡으러 커피 한잔하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적산가옥 카페 마당이다. 세병관과 충무교회 사이에 나지막이 앉은 이 집은 할아버지가 구입해서 손자인 현주인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적산가옥이라 불리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친일파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들보는 100년 이상된 백두산의 적송이고 곳곳에 100여 년의 시간이 묻어있다.
실제로 카페주인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집이었고 선주였던 아버지와 외국문물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덕분에 유럽의 도자기와 고가구 같은 부모님의 유품과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고 말하신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에 통영 옛 모습과 축구선수 김민재 이야기로 통영에 대한 궁금했던 것들을 알려주신 사장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드디어 4시다. 통영항 근처의 다찌집으로 갔다. 다찌는 "다찌노미"에서 나온 말로 서서 먹는 잔술집을 말한다. 뱃사람들이 항에 내려서 살아왔다는 기쁨과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서서 한잔씩 마시며 주인장이 알아서 챙겨주는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술집이다.
지금은 횟집처럼 일인당 3~5만 원 고르면 알아서 안주를 갖다 준다. 신선한 해삼, 멍게, 개불부터 시작해서 고추냉이에 절인 낙지 그리고 회 마지막엔 생선튀김과 구이까지 나온다. 술 좋아하는 아재들에게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니만큼 소주빛은 맑고 푸르다.
다찌집 가기 위한 통영 여행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거가대교, 시래깃국집, 적산가옥가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었다. 하루 알차게 통영서 잘 먹고 잘 놀았다. 아재들의 통영여행 끝!!
통영은 충무공이 지키던 한려해상의 요지였다. 그리고 한창때는 바닷고기와 돈을 긁어모으던 항이었다. 거친 바다를 지키고 살아남으려면 사람도 대차다. 그러니만큼 시래깃국물은 진하고 소주빛은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