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고 싶다면 모임을 시작해보세요
난독증이 있는가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국어 공부를 하며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접했다. 하지만 대학생 이후로는 '노력'하지 않으면 책을 펼 일이 잘 없었다. 과제 때문에 필수로 읽어야 하는 독서를 제외하면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졸업 조건으로 책 15권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내는 게 있었는데 겨우 냈을 정도이다. 하지만 요즘은 한 달에 적어도 4권, 많으면 6권의 책을 읽는다. 직장 다니면서 책 읽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이라면 1년 동안 겨우 읽었을 양을 한 달만에 소화 중이다.
이 모든 시작에는 독서 모임이 있었다. 취업을 한 뒤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서 '소모임' 앱에 가입했다. 동호회를 찾는 2030이 애용하는 앱인데, 가끔 영업 등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모임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일단 하나의 주제로 2~3개의 모임에 가입한 후 본인에게 가장 잘 맞고 오래 활동할 수 있는 하나를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 나는 다행히 처음 들어간 모임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선택할 수 있었다.
독서 모임은 자율독서와 지정 독서가 번갈아 진행되었다. 1,3주 차는 자율독서, 2,4주 차는 지정 독서로 일정이 고정되어 있었다. 자율독서 때는 각자 책을 하나씩 선택해 소개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에 화두를 던졌다. 지정 독서 때는 발제자가 미리 책을 선정하고 모임 전에 발제문을 먼저 공유한다. 발제문은 6~10개 사이인데, 참석자들은 모임 전 발제문을 읽고 생각 정리를 한 후 모임에 참석한다. 이렇게 진행하면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읽는 다면 늘 실용 서적 위주로 골랐다. 당장 업무에 필요한 책만 읽었다. 하지만 여러 취향을 가진 사람이 모였기에 지정 독서의 스펙트럼도 정말 넓었다. 늘 소설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허구의 이야기라면 영화나 드라마도 있는데 왜 소설을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 읽다 보니 소설만의 맛을 알게 됐다. 소설은 능동적이다. 어떤 배우나 CG, BGM도 없이 오로지 작가의 글과 내 상상력에 의존해 읽어내야만 하는 그 맛. 지정 독서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매주 모임도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간접 경험도 쌓아 나갔다.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보통 친구, 지인, 직장 동료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생각의 틀이 비슷하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도, 직업도, 가치관도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세상은 다양한 생각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지금은 2년 반째 활동을 하다 고인물로서 어쩌다 운영진까지 하고 있다.
이제는 출퇴근 길에 잠 대신 책을 본다. 처음에는 종이책은 영 어색해서 전자책 서비스를 구독했다. SNS 대신 본다고 생각하니 쉽게 읽혔다. 굳이 무거운 책을 들고 다녀도 되지 않아서 부담도 덜 됐다. 주말에 쉴 때도 '책'이 하나의 선택지에 있다. 집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 스콘 하나를 시키고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독서가 미션보단 습관에 가까워지며 다른 할 일이 너무 하기 싫을 땐 책을 읽을 정도이다. 그만큼 일상 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책은 한 사람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만난 다는 것은 그의 세계를 만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 누군가의 경험이나 상상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해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 큰 행운이다. 1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다. 가끔은 책을 읽다 보면 종이 건너편에 있는 작가를 만나는 느낌도 든다. 단지 쓰이고 읽히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작가가 과거에 한 이야기를 현재의 내가 듣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경험, 그리고 타인의 세계를 만나고 싶다. 그 과정에서 나의 세계도 조금씩 더 넓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