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터진 물건 36
나는 완벽한 하나의 시작이었어. 살짝 외로움이 있었지만 유일 무이한 존재로서의 자부심!
뭐야, 둘째라고? 아니 근데 왜 똑 같이 생겼지.
헉, 첫째가 벌써 있었다고? 좀 열받네.
견제하는 기류가 살짝 있지만 둘이 되니 외롭지는 않네. 인정, 하지만 비교 금지다.
잉? 셋째를- 삼 형제야?
그래, 오히려 둘보다는 셋이면 나은 듯.
삼이라는 숫자는 행운의 숫자니까. 삼세판, 트리오, 삼삼 오오, 천지인, 하늘, 땅 바다,
삼계탕도 혹시? ㅋ 그건 아니겠지.
셋은 왠지 맘이 좀 편해지는 느낌이야-
근사해. 우리 셋다.
헉, 넷째가? 사차원, 이상한 놈이 온 거 아냐?
말이 심하다. 셋보다는 짝도 맞고, 꼭 4인용 세트 같고 ㅋㅋ
4계절도 그렇고 거의 모든 가구의 다리는 4개지.
그것만 봐도 넷은 완벽한 균형 아닐까? 안정되고 편하고 좋다야.
으잉? 다섯 번째가 있다고?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계속 더 오라고 해.
10의 절반 5. 다섯 손가락. 제5 원소. 5씩 뛰어 세기.
다섯꼭지 별.
넷이 완벽하다 했는데 다섯이 오히려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야. 나쁘지 않네.
다 똑같이 생겨서 이건 뭐 표시라도 해줘야지.
많으니까 누가 누군지 더 모르겠잖아.
아오!! 더 있어? 여섯 번째?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언제까지 더 올 거야?
사실 다섯 넘어서면 하나 더 있고 없고는 별 타격이 없어.
그래, 이왕 많은 거 다섯이나 여섯이나 괜찮아.
게다가 우린 똑 같이 생겨서 누가 몇째인지 모르게 되는 특 장점이 있잖아.
여섯, 좀 많아지긴 했지만 부자 같고 조화롭다.
아 - 이럴 줄 알았어. 결국 일곱 번째- 왜 이렇게 7을 좋아하는거야?
일곱 색깔 무지개, 일주일은 7일, 럭키 세븐.
백설공주에게도 일곱 난쟁이.
받아주자. 딱 요기까지만.
많기는 많다. ㅎㅎㅎ 하지만 다 알다시피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매력이 우리에겐 있어.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 (337 웃음이라고 아는지.)
근데 우린 도대체 뭘까? 컵? 장식품?
뭔지 알 수 없지만 일곱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
평등하고 아름답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같이 나누고 함께 하자.
다들 똑같아서 아주 흡족한 마음이었어.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이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별 것 아닌 조그만 변화가 생겼어.
"헐! 너 속에 뭐 들어왔어. 봐봐 뭐야?"
" 딱딱해. 돌멩이 같은데?"
" 돌멩이? 무거워? 가벼워?"
"어떤 기분이야? 어떤 느낌? 부럽다아- "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얼떨떨했지만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느라 애썼어.
그런데 지켜보던 막내? 가 나서서 쏘아붙이기 공격을 시작했지.
"야 쌔고 쌨는 게 돌멩이인데 그거 하나 들어왔다고 그러기야?"
"그리고 우리가 한 약속은 잊었냐? 뭐든 다 같이 하기로 했잖아."
" 맞아, 너만 다르잖아. 그건 좀 반칙 아니야?"
"그걸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다고 - 내가 원한게 아니잖아."
좀 미안은 했지만 뭐, 어쩌라고 싶었어. 솔직히.
비난이 빗발칠수록 이상하게 더 당당해지더라고.
가진 자의 여유? ㅎㅎㅎㅎ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갔어.
"아니 쟤는 돌멩이를 가졌는데 우린 모래알 하나도 없다는 거지."
"너무 부럽다. 나도 저런 돌멩이 하나 가지고 싶다."
"어떻게 하면 돌멩이를 가질 수 있지?"
나를 둘러싸며 묻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한 가운데 서게 되었지.
다들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거야. 째려보는 것도 같고
모두 한꺼번에 달려드는 상상이 싹 -스치면서 -
순간 공포가 느껴졌어.
"자자 다들 모여봐. 내가 다 이야기를 해줄게."
'그래 난 특별한 존재였어. 뭐 다 똑같다고 아니, 절대 다 같지 않아.'
'보자 - 돌멩이를 어떻게 얻는지를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 음'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는데 우연히 돌멩이가 들어왔을 뿐이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둘러대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막 나왔어.
그날부터 모두는 돌멩이를 얻는 방법을 들으려 나를 따라다녔어.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우쭐한 기분이었지.
솔직히 너무 쉬웠어.
조명을 이용해서 몸을 좀 더 빛나게 하는 법.
옆 친구와 살짝 떨어져 눈길 끌기
몸을 빛나게 하거나 반짝이는 것-
착해 보이거나 똑똑해 보이는 법을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했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하는 거야.
이건 아닌데 어쩌지? 고민도 잠시 헸었어.
그렇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어. 모든 게 너무 달콤했거든. 너무 멀리 와버렸던 거야.
그냥 '둘'이라는 말을 잠깐 하면 알아서 둘씩 짝을 지어 서서 무슨 말이든 어서 하라고 기다렸어.
점점 나의 헛소리는 묘법, 비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어.
이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서 가는 것 같았어.
더 심각한 것은 나조차도 내가 그런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는 거야.
'일'이라는 말만 해도 일렬로 서서 꼼짝도 않고 기다렸어.
하하하 나는 왕이 되었어.
무서울게 없어졌지.
그런데다 내가 왕이라는 확신을 주는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거든.
몸을 살짝 비틀며 각도가 중요하다느니 헛소리를 막 해대는 데 딱 그때,
돌멩이 두 개가 톡 톡 떨어져 들어온 거야, 내게!!!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하하하하.
밑천이 다 떨어져서 고민했는데 이게 무슨 찰떡같은 타이밍이냐고 -
놀란 애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양 옆으로 도열해서 부러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지.
나도 속으로 이 갑작스러운 행운에 엄청 놀랬으니까.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모두를 거느리고 살게 되었지. 부러울 게 없었어.
그 돌멩이가 날개가 달려서 날아가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다들 돌멩이를 얻기 위해 안달했지.
그럴수록 나의 왕국은 점점 굳건해졌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지.
쉽게 얻은 공짜 왕국은 무너질 때도 순간이란 걸.
"아 - 여기는 돌멩이가 들어 있어 안 되겠네."
"얘는 빼고 6개면 충분해."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어.
깨끗한 물을 채우고 - 물이 닿을 때 너무 흥분되어 부르르 떨었다고.
작고 예쁜 꽃을 꽂아 파티 테이블 위에 앉아있었다고.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과 이야기와 웃음 속에서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고
애들은 매일 그 이야기를 하며 아직도 꽃향기가 묻어 있는 것 같다고 흠흠 대지.
돌멩이 3개를 안고 있는 이상 내겐 희망이 없잖아.
망한 거지.
꿈같았던 나만의 왕국, 화려했던 추억이나 씹으며
눈에 뜨이지 않게 최대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누가 지나가기만 해도 뭘 넣는 줄 알고 움찔 움찔 놀라며서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