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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16. 2024

증발

죽은 나무와 산 나무 6

전근 가는 선생님이 주고 간 이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다육이 종류였다. 처음 우리 교실로 올 때는 겨울 방학을 지나서인지 거의 잎이 없는 상태였는데 봄이 오자 새 잎이 나고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신이 나서 싱싱하게 새 가지를 뻗고 도톰한 잎이 자꾸자꾸 자라 나왔다. 풍성한 잎과 가지로 창턱에서 다른 작은 화분들을 거느리고 한껏 매력을 발산했다.  

  

그렇게 다육이가 삶의 절정기를 막 즐기고 있을 즈음 학교는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방학하면 장소를 정해서 교실의 화분들을 한데 모아 관리를 한다. 전교의 화분이 다 모이면 엄청 많은 데다 관리라고 해야 물만 주는 거라, 여름 한 달 지나고 오면 식물들은 몰라볼 정도로 자라 버린다. 

서로 엉기고 넘어지고 거기 풀까지 자라 있다. 화분 밖에는 이끼가 끼고 흙이 튀고 반을 적어 놔도 개학했을 때는 아리송해진다. 이게 우리 반 화분이 맞나?  남의 반 화분을 가져가기도 하고 어떤 화분은 너무 엉망이라 안 가져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해는 각 층의 화장실에 갖다 놓으면 청소하시는 분이 방학 동안 관리를 한다고 알려왔다. 무거운 화분 들고 안 내려가도 되고 개학 후에도 찾기도 좋고 얼씨구나 화장실로 화분들을 옮겼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신나는 여름방학을 보내고 심심하던 텅 빈 학교를 시끄럽게 채우는 개학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개학 준비를 하려고 하루 전 학교로 나갔다.  


화분을 찾으러 화장실 문을 여는데 공기가 훅하다. 엥?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화분은 있는데 화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 어디로 증발했나?

화분의 식물이 모두 말라죽고 화분만 남아 있었다. 한 달 전 과거로 시간을 건너가서 화분과 안에 마른 식물이 뭐였는지 기억해 내야 했다. 

그중에서도 몸을 비틀며 살려 달라고 손가락들을 뻗는 듯 한 괴로운 모습의 화분은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이건 뭐지? 누구 화분이야? 어느 반 것이지? 다육이와 이 화분을 연결 짓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뒤에야 알아봤다. 그게 다육이란 걸.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방학 동안 한 번도 문을 열지도, 물을 주지도  않았던 화장실은 덥고 숨 막히고 목이 말라 모두 말라죽어버린 것이다.


 뼈만 남은 다육이를 교실로 데려왔다. 무게를 못 이길 만큼 잎이 무성하여 가지를 묶어 준 리본이 다육이의 죽어가던 시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힘이 빠진 채 가지를 붙들고 있었다. 하나씩 떨어져 말라 가는 잎들을 보며 누군가 와 주기를 얼마나 애타게 다렸을까. 저 문이 열리기를. 

이 모양이 되도록 버티어 왔을 하루 하루의 시간을 생각하니 내가 죄인 같았다.


그렇게 다육이는 생명과 죽음의 고통을 저만의 방법으로 강렬하게 남겼다.


종지 화분들 사이에 아기 손가락 만한 다육이가 반듯한 잎을 펼치고 있다. 맞다 그 다육이다. 화분을 옮길 때 작은 가지 하나가 떨어져서 별 생각 없이 집으로 가져와 심었는데 그 후 10년 동안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내고 있다. 엄마가 떨구어 낸 가지 하나가 아직도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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