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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23. 2024

당근 전쟁

죽은 나무와 산 나무  13

학교 텃밭에 당근을 심었다. 당근이 자라 뽑을 때 통통하고 매끈한 당근이 붉은 얼굴을 하고 쑥 나올 때 그 신기함을 아이들이 느껴 볼걸 상상했다. 잎이 얼마나 무성하게 잘 자라는지 우리는 모두 더욱더 믿음과 기대에 찼다.


당근을 뽑으러 가는 것 자체로 이미 축제다. 아이들이 손을 모아 첫 뿌리를 뽑았다. 엥?  이게 뭐야?  다시 다른 것, 이것도?  이것도 저것도? 뽑을수록 더 이상한 당근이 나왔다. 당근이 맞기는 맞는 건가? 애매하고 이상한 모양의 당근 뿌리가 이어 나왔다. 당황한 것은 아이들보다 나였다.


 이 이상한 당근은 모두에게 의문을 남겼다. ‘우리가 부지런히 물 주고 무성한 잎을 칭찬하고 통통하게 굵어가는 당근 뿌리를 상상할 동안 땅속에서는 자기들끼리 세력 다툼으로 얽히고섥히고 난리였나 봐. 그럼 땅 위 무성했던 잎의 평화는 땅 속 전쟁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나? 속았다. 속았어. 아이들과 당근을 잘라먹기로 했는데 이걸 먹어도 되나? 난감하다.


당근을 씻고 잔뿌리를 정리했지만 별반 더 나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선생님, 당근이 이상해요. 당근 왜 이래요. 당근 원래 이런 거예요. 당근 아닌 거 아니에요. 당근이 괴물 같아요. 이거 먹을 수 있나요, 당근 맞나요. 파는 거는 이렇게 안 생겼는데 –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당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야 게임 캐릭터 같아 하자 남자 애들은 더 시끌시끌 해졌다.  

당근은 이렇게 생기면 안 되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돌연변이 인가? 뭐가 잘 못 된걸까?

나도 대답을 잃었다.  

 

 “선생님 당근이 서로 껴안고 있어요, 땅속에서 무서웠나 봐요.”

가만히 보고 있던 여자 아이의 이 한마디로 인도 사원의 조각을 방불케 하는 당근들에 대한 난무하던 추측들을 착하고 아름답게 마무리시키기는 하였다.   

      

 무엇이나 각자 고유의 성질이 있다. 그것을 거스르면  혼란과 내전으로 엉망이 된다. 당근은 씨앗을 뿌려 그 자리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 모종을 심으면 놀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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