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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Jul 11. 2021

당신의 '마음'을 검색하다

영화 "서치"(Searching)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산호세의 한 한국계 미국인 가정.  이 영화 <서치>(원제: Searching)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이비드 킴(존 조) 가족의 행복한 일상들이 데스크 톱 화면에 재생되며 시작되죠.  한 침대에서 꺄르륵거리고, 함께 피아노를 치며, 학예회 무대에서 행복해하는 여느 화목한 가정과 다를 바 없어요.  하지만 어느 날 엄마에게 큰 병이 찾아오고 회복과 재발이 거듭되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동영상속 양갈래 머리의 꼬마 아이는 이제 사춘기 소녀가 되었고 항상 웃음이 가득했던 아빠의 얼굴은 이제 그늘져 보이기만 하죠.  '엄마'라는 말을 꺼내기가 서로 너무나 어색해졌지만 데이빗은 언제나 자신이 딸 마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접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 사실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친구들과 그룹 스터디를 한다고 나갔던 마고에게서 늦은 밤 급작스럽게 전화가 걸려 옵니다.  음성통화 두 번, 영상통화 한번.  잠에 곯아떨어졌던 아빠 데이빗은 그 부재중 전화들을 끝내 받지 못했죠.  다음날 일찍부터 딸에게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보지만 묵묵부답.  하루이틀이 지나가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게 돼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가출이나 납치, 다른 범죄 등의 가능성들이 언급되면서 아빠 데이빗은 스스로 딸 마고의 흔적을 찾아나서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딸을 찾는 아빠의 이야기.  네, 영화 <서치>의 이 스토리 구조 자체는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게 없습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형태로 만들어져 왔던 스토리니까요.  'Good Luck'이라는 전화기 너머 목소리 하나를 단서 삼아 딸을 납치했던 인신매매 조직원들의 목을 일일이 꺾어주셨던 리암 니슨의 <테이큰> 역시, 딸 찾는 아빠의 이야기였잖아요.  그 흔한 설정에서 출발해 이 작품은 단돈 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힘겹게 만들어졌습니다.  A급 영화배우 한 명의 출연료만큼도 되지 않는 '푼돈'이었죠.   


  한데 예상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8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작품 <서치>가 처음 공개되자마자 곧바로 관객상인 'Best of Next'를 거머쥐며 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으로 떠올랐어요.  이후 제작비의 70배가 넘는 전 세계 흥행수익 7천5백만 달러의 대성공을 거둡니다.  당시 국내에서도 뜨거운 입소문에 힘입어 295만 명의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이 저예산 스릴러 영화의 진가를 직접 확인했었죠.  그렇다면 대체 이 작품의 어떤 점이 당시 수많은 영화 비평가들과 관객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흔하디 흔한 설정의 이 영화가 여타 작품들과 구별된 가장 큰 차이점은 말입니다,  이야기를 관객들의 눈앞에서 풀어내 가는 스타일,  그 독특한 '표현 방식'에 있었던 거죠.






미처 몰랐던 온라인 속 딸의 다른 모습들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쉽게 휘발되는 관계들






  단란했던 세 사람에게 엄마의 불치병이라는 불행이 찾아오고, 결국 두 사람만 남겨지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윈도우 데스크톱 화면상으로만 진행됩니다.  화면 속 마우스 커서가 계속 움직이며 동영상을 열고 메일을 읽으며 사진 파일들을 움직이죠.  기쁨과 슬픔, 그리움의 감정들이 배우들의 직접적인 연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PC 속 수많은 작업창이 열리고 닫히는 그 과정들을 통해 전해져 옵니다.  우리가 평소에 집 혹은 직장의 PC나 핸드폰을 통해 늘 습관적으로 해오던 작업들이기도 해요.  한데 이 영화는 마우스 커서의 미세한 망설임, 몇 번씩 지우고 다시 쓰는 대화창 메시지들, 심지어는 특정 파일을 집어서 휴지통으로 보내는 그 움직임들만으로도... 그 화면을 조작하고 있는 누군가의 섬세한 감정들을 스며들듯 체감하게 만들죠.  


  이런 방식으로 딸의 온라인상 '흔적'들을 되짚어가게 되면서 영화는 더욱더 본격적으로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온라인 공간들의 화면으로만 계속 채워집니다.  그런 방식으로 서사를 계속 이어 가요.  윈도우 XP, 맥 OS, 구글 검색, e메일,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라이브 방송,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 텀블러, 핸드폰, 뉴스 화면과 CC TV까지... 아빠 데이빗의 시각에서 직접 조작하고 실행하는 온라인상의 해당 화면들로만 영화가 100퍼센트 진행되죠.  한데 한순간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굉장한 몰입감과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만약 단순히 그 PC 화면들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걸로만 그쳤다면 영화는 지켜보기에, 동시에 감정을 느끼기에도 꽤 지겹고 불편했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인도계 미국인 감독 아니쉬 샤간티는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들을 시시각각 유려한 편집으로 전환시켜가며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꽤 흥미롭게 만들어 냈습니다.  내용상으로만 짐작하자면 납치, 가출, 학교 따돌림, 대마초, 성범죄, 온라인 사기, 보이스피싱, 심지어는 끔찍한 폭력과 살인까지도 떠올려지는 그런 흐름이지만... 실제론 그런 자극적인 묘사 한번 없이도 긴장을 고조시키스릴러적 본연의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기도 해요.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엄마는 널, 자랑스러워할 거야






  이런 방식으로서의 연출 자체가 물론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에요.  일부가 되었든 극 전체가 되었든 이런 형식을 차용한 기존의 대표적 작품들로는 <디스커넥트>, < 더 덴>, <언프렌디드> 시리즈 같은 스릴러 및 호러 작품들이 있었죠.  한데 열거했던 그 작품들은 대체로 그 독특한 표현 기법 자체로만 잠시 주목을 받는데 그치고 만 편입니다.  한데 이 영화 <서치>는 그 연출기법으로서의 스릴러적 쾌감뿐 아니라 실은 의외로 작품 이면에 녹아 있는 감정적 기조로 인해 더 큰 호평을 받았죠.  수많은 IT 기기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SNS상의 단서를 집요하게 쫓아가는 말 그대로 이 '써칭'이... 결국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되새겨보면 감정적 유대가 서서히 끊기고 있던 아빠와 딸이 다시 서로 이어지게 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비록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냈지만 아삐 데이빗은 딸 마고와 원활히 소통하고 있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SNS 속 딸의 '수상쩍은' 행동들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죠.  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 숨겨진 딸의 숨겨진 이면의 감정들을 서서히 알아가면서 자신이 진작에 딸에게 했어야 했던 것들, 보여줘야 했던 것들, 직접 표현해야 했던 것들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가장 최첨단의 디지털 표현 방식으로 가장 전통적인 아날로그 스타일의 '감정'들, 결국 그 모든 것들의 궁극적 이유가 되는 사람의 그 '마음'들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가고 그에 맞춰 우리의 생활양식도 또한 계속 급격히 변해갈 테죠.  한때 유행을 주름잡았던 '싸이월드' 홈페이지가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듯 현재 한창 대세인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인터넷 방송, 심지어 검색계의 공룡이라고 할 수 있는 구글마저도 언젠가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대체되고 말 겁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꾹꾹 눌러쓰던 손편지가 전자메일, 화상채팅, 메신저, 영상통화의 형태들로 바뀌어 온 것과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그 형태가 무엇이 되든 중요한 건 그 '방식'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수단이 얼마나 빠르고 편리하며 유용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 속에 담겨야 할 '진정성'과 '영혼'이 결여될 때 종종 심각한 폐해와 무서운 재앙마저 초래될 수 있다는 걸... 우린 영화 밖 현실을 통해서도 종종 어렵지 않게 목격하곤 하니까요.   


  비단 이 작품 <서치> 속 아빠 데이빗 킴과 딸 마고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진 않죠.  저야 따지자면 주인공 데이빗과 같은 현란한 서칭은 고사하고 매년 전자 공인인증서 갱신하는 것도 꽤 귀찮아하는 구식 아빠이긴 하지만 어느 유명한 이의 말처럼 그저 'SNS가 인생의 낭비다'라고만은 단정 짓고 싶진 않아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단 그 어떤 방식으로든 그 속에 어떤 '감정'을 담아 넣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니까 말입니다.  이 독특한 작품을 촬영 후 거의 2년간이나 혼자 붙들고 앉아 뺑이 치며 일일이 편집했을 젊은 감독 아니쉬 샤간티의 바람도 분명 그러했던 거 같아요.  이 작품을 보면서 은연중에 계속 와닿았던 의외의 그 '따스함'도... 결국엔 같은 맥락이었던 겁니다.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이미지들의 모든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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