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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Sep 07. 2021

아니,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영화 "달콤한 인생"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






      " 그렇게 말 안 하고 있는 건

         나하고

         상대를 하기 싫다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해서

         본인이 앞으로 생활 편하겠어요?"





  6년 전쯤이었군요.  

  면전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게.

  모든 걸 이미 본인의 생각대로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그 사람은 내게 정확한 사실을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스스로가 답을 내린 그 상황에 대해서 내가 순순히 '인정'하기만을 바랬어요.  뭔가 얘기해보려다 그냥 입을 닫았습니다.  이런 류의 대화, 특히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에서의 이런 대화는 그 대화의 내용보다 결국 대화가 마무리되는 형식이 더 중요한 법이거든요.  말을 하면 반박이나 궁색한 변명이 되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내린 결론들에 대한 긍정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경우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나아 보여요.  내 입장에선.   


  서로가 묻고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가 순간을 통해 얻어내려 하는 건 결국 나의 복종인지 모릅니다.  그것이 나의 침묵으로 인해 그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모멸감'을 덜어내는 길일 테니까.  그가 느낀 '모멸감'이 그렇게 그대로 내게 똑같은 '모멸감'으로 돌아옵니다.  

문득 그러고 있는 그 사람이나 나 자신이나 왠지 똑같이 치졸하다고 느껴졌어요.  우리 서로가 이미 마음속에 정답을 알고 있는데도 돌려돌려 에둘러 상대에게 그 정답을 말하길,  직접 인정하길 바랄 뿐이니까요.  어쩌면 그때 그순간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나를 이렇게 나쁘게 만드는 건, 바로 너라고.  


  가끔씩 김지운 감독의 작품 <달콤한 인생>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얼핏 보면 그냥 시간 때우기 괜찮은... 좋게 말해 누아르, 나쁘게 말해 흔한 조폭영화에 불과해 보이는 외피를 띠고 있긴 하죠.  보스에게 신임을 받던 한 남자가 여자로 인해 파멸하고 그래서 복수하는 이야기.  소재 자체도 새로울 건 없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김지운 감독 특유의 '후까시' 넘치는 영상, 이미지들이 주축이 되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피가 튀고 살벌하게 총격전까지 벌어지며 숱한 인물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이 작품에선 정작 명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요.  왜들 이렇게까지 급발진을 서로 해대는지 직접 말하진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신을 당했다며 그 '이유'를 캐묻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속 시원하게 설명하진 못하죠.  


  명확한 기승전결, 명백한 인과관계.  

  그로 인한 속시원한 '결론'을 원했던 관객들에겐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선 비호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단순해 보이는 내러티브, 그리고 거친 액션씬들 속에 명확히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이 담겨 있는 그 언밸런스함이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해요.  다시 볼 때마다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들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더 많은 게 보여요.  어쩌면 그 점이 말입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이 영화가 여러 가지 측면으로 재해석되는 결정적인 이유일 테니까요.






         



흔들렸던 건,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었다




니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지?   넌 자꾸 딴 데서 찾는 거지?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





 선우(이병헌)의 입장에선 이 급작스러운 변화들이 전혀 납득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7년간 강사장(김영철) 밑에서 개처럼 충실히 일해오는 동안에 그가 어겼던 단 하나의 지시는, 걸지 않았던 그 전화 한 통이었거든요.  대부분의 자잘한 일들을 알아서 처리해왔고 그래서 아마 선우는 '그 일' 또한 본인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라 여겼을 겁니다.  그런 '독단적인' 결정은 물론 보스의 애인인 희수(신민아)로 인해 생긴 미세한 '균열'로부터 비롯된 것이긴 하죠.  원래의 냉철한 그였다면 선우는 스스럼없이 지시대로 희수를 처리했을 겁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거의 나르시시즘에 가까워 보이는 그의 행동 스타일은...  동료지만 은근히 아래로 깔고 있는 문석(김뢰하)이나 위협적인 경쟁자인 백사장(황정민)을 심하게 하대하는 모습들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런 그의 원칙이 보스의 여자 희수로 인해 '틈'이 생겼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지극히 감정적인 선택이었죠.  흔들림.  그 작은 감정적 판단 하나로 인해 본인이 얻은 이익이 티끌 하나만큼 없음에도 당해야만 했던 끔찍한 폭력들은 선우의 입장에선 꽤 억울했을지 모릅니다.  그 작'균열'이, 미세한 '흔들림'이 도대체 이렇게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만한 것인지.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것인가, 혹은 합당한 것인가의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때로는 이성과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듯한 세상의 이치들은 실은 굉장히 감정적인 치졸함들에 의해 움직여지기도 하니까.  그의 관점에선 끝내 알 수 없는 대답을 계속 요구하는 강사장이나, 하이에나처럼 이때다 싶어 물고 뜯으려 달려드는 동료 문석이나 백사장이 치졸하고 졸렬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세상이 원래 은근히 그런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한데.  아니 사실은 대부분이... 그 밑바탕 속엔 은근히 '감정적'인 것들이 깊게 깔려있기 마련이죠.  겉으론 다들 아닌 듯 다른 말들을 하고 있지만.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진짜 '이유'를 말해보라며 얼굴에 총을 겨누던 선우에게 강사장은 '모욕감'이란 말을 내뱉습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어떤 종류의 모욕감인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지만 어쩌면 이 마지막 순간에도 강사장 역시, 파국의 원인을 '딴 데'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 점에선 선우와 똑같아요.  

젊은 '애인'이라고 말했지만 여대생 희수와의 관계는 사실 돈 주고 잠자리를 함께 하는 스폰에 불과합니다.  당돌했던 그녀에게 혼자서 신선한 연정을 품었을지는 모르지만 희수에겐 사랑하는 다른 젊은 동년배 남성이 있었죠.  차갑고 냉혹하게 때론 잔인할 정도로 삶을 철저히 컨트롤 해왔던 그가, 부하인 선우에게 남몰래 그녀를 감시하라고 멋쩍게 당부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그에게도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예요.  알 수 없는 수치심, 질투, 시기 그리고... 그런 감정들에 사로잡히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


  그 와중에 결국 희수에게 '젊은' 남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부하인 선우가 자신 몰래 그 사실을 덮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돈이나 폭력으로 취할 순 있어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어린 여자, 그녀의 진짜 사랑을 가질 수 있는 다른 젊은 남자.  그런 그들에게서 느낀 일종의 굴욕감, 그것에서 오는 극렬한 모멸감을 강사장은... 자신과 똑같은 형태로 '흔들려버린' 부하 선우에게 폭발시켜버린 것이죠.  단지 어린 여자 한 명으로부터 촉발된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마치 준엄한 조직 위계에 따른 단죄 인양 포장하려 애썼지만 그건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처신이었습니다.  본질을 덮고 있었어요.  무릎을 꿇은 선우에게 왜 그랬는지 진짜 '이유'를 말하라고 다그쳤지만 그건 사실 따지자면, 희수와 그 젊은 애인에게 사죄와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파국의 끝에서, 자신을 그렇게 망가뜨린 '이유'를 강사장에게 다그쳐 물었던 선우도 그 감정들을 어렴풋이 느꼈을 겁니다.  선우가 그걸 어렴풋이 느낀다는 걸 강사장 역시 느끼고 있을 테구요.  하지만 끝내 직접 해 줄 수 없는 대답이죠.  이미 알고 있는 걸 물어야만 하고, 이미 알고 있지만 역시 답할 수 없는 두 사람은... 결국 마주 보고 있는 상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었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너의 마음뿐


             







  결국 명확한 것은 실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희수(신민아)에 대해 선우(이병헌)가 어떤 마음을 가졌던 건지, 강사장(김영철)에게 있어 희수라는 여자가 어떤 존재인 건지, 이 모든 파국의 계기였던 희수는 정작 선우의 그 '흔들림'을 느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강사장과 선우, 두 사람이 왜 끝내 본심을 말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폭주하려 했는지 말이에요.  

2005년 개봉 당시 '허세 가득한 미장센만 남는 영화'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관람 후에 남겨지는 여운이 꽤 깊은 작품으로 서서히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었죠.  인물들의 모든 '감정'들을 일일이 설명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 미묘한 뉘앙스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보게 했던 그 여백의 미로 인해, 이제는 매니아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폭력과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비정한 남자들의 세계, 이른바 누아르의 영역 속에 있지만 결국엔 드러내지 못하는 치졸한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 감정들의 미세한 '틈'으로부터 야기되는 삶의 속절없는 파국을, 쓸쓸하고 허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도 와닿곤 하죠.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들려줬던 나뭇가지와 바람에 관한 그 선문답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결국 어떤 형태로든 '흔들렸던 건' 선우나 강사장, 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이 지금 내 눈을 가리고 또 무엇이 내 귀를 막아서 삶을 위태롭게 '흔드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저 먼 밖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라는 쓰라린 깨달음과 다름없을 테죠.  

자, 6년 전의 나는 그 사람에게 마치 영화 속 선우가 강사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니 진짜 이유를 말해보라'며 당당히 맞짱을 떠봤을까요?  설마 그랬을 리가 있겠습니까.  서로 감추고 있는 감정의 민낯,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과 먹고 사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지금도 그와 나는 마음속 깊은 각자의 치졸함을 서로의 탓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에게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멸감'도 결국 어쩌면, 마주 보고 서 있었던 선우와 강사장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겠죠.  


그와 나는 말입니다,

아직도

'흔들리는' 그 나뭇가지들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요.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이미지들의 모든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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