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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4. 2022
단평 2. <파워 오브 도그>
당신이 감추고 있는 건 무엇인가
* 1920년대 미국 몬태나.
거친 황야, 흙먼지 날리는 평원, 소떼, 카우보이 모자를 쓴 마초남들이 우글대며 나오지만... 액션 없고, 총질 전혀 없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오는 화끈한 액션 서부극으로 생각하심 큰일 나요. 오히려 예상외로 어느 순간 잠들어 있거나, 끝내 중간에 정지 버튼을 눌러 다른 영화 목록을 뒤지게 될 수도 있죠.
* 거의 종반부까진... 드럽게 성격 안 맞는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살면서 티격태격 다투는 홈 드라마에 가까워 보여요.
* 종반부에 이르면서 급격히 장르 변환됩니다. 실은 고도의 심리 스릴러였어요. 후덜덜.
* 영화의 전개가 굉장히 느리고, 대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인물들의 심리를 서서히 그라데이션 하듯이 '유추'해 봐야 해요. 전반부엔 인물들의 성격이나 특성들이 흑백으로 나뉘듯 모두 명확하죠. 한데 후반으로 갈수록 모호해집니다. 착하고 나쁨, 옳고 그름, 순하고 악한 것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죠. 단순히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복수극'이지만, 좀 더 넓게 보자면 인간 본질을 규명하는 그 '정체성'에 관한 고찰을 그리고 있기도 합니다.
*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긴 애매합니다. 그러나 막상 끝나고 난 후부터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시 되짚어보면 더욱 흥미로워지는 이야기죠. 심지어 개별 인물들의 시점에서 다시 떠올려보면 각각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된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습니다.
* 마초적이고 거칠고 안하무인으로 보였던 주인공 필(베네딕트 컴버배치). 뭔가 당장이라도 큰 '사고'를 치진 않을까 싶어 내내 긴장하게 만들었던 그의 관점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굉장히 처연한 '순애보'였습니다. 거친 시대를 살면서 진짜 자기자신을 감추고 계속 오버 페이스를 해야 했던 한 여린 남자가 실은 그 '연약한' 감정에 휘둘려 대체 왜 자신이 파국을 맞는지도 모른 채 비극을 맞는 이야기였으니까요.
* 중간에 낀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조지(제시 플레먼스)에겐, 가족의 냉대를 무릅쓰고 힘든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평범한(?) 일상 가족 드라마.
* 바람 불면 날아갈 듯 비실비실해 보였던 약골 청년 피터(코디 스밋 맥피)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는, 한 마디로 소름 끼치는 정교한 스릴러였죠. 이 친구의 눈빛, 표정, 말투, 태도의 미세한 변화들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다시 보면 거의 <유주얼 서스펙트>급 소름이 일어납니다. 그의 이런 '치밀함'이 이게 처음이 아닐 수도 있었겠단 생각마저 들죠. 심지어 이것이... 또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관점에서도 보자면 이 영화는 어쩌면 한 편의 완벽한 '사이코패스 비긴즈'.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 '행동'들이 다 엄마를 위한 것으로 비칩니다만 그것 또한 스스로의 자의적 해석일 수 있어요. 엄마가 방금 전까지 이뻐하던 토끼를 굳이 그 방에서 무심히 해부하던 장면에선... 오히려 어떤 일종의 감정적 결함이 보이기도 했죠. 물론 이 영화 자체가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 '감정적 결함'을 다루는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이 친구는 그 '결함'을 인지하고 이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몇 수 위.
* 이것은 옳다, 저것은 틀리다고 명백히 가치판단을 내리기엔 뭔가 모를 '흐릿함'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호불호가 될 수 있죠. 하지만 그래서 여러 관점으로의 해석이 가능한 영화기도 해서,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는 추천해 드립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요. "인간은 미스터리한 존재여서 어느 한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요. 맞아요. 우리는 다 제각각 선하고, 조금은 악하고, 또 조금은 설명하기 힘든... 알 수 없는 구석들이 분명 있으니까.
* 때론 사람들이 무엇을 감추고, 또 반면에 무엇을 '일부러' 드러내며 살아가는 걸까란 관점에서 감상하셔도 좋으실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