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간 적이 있을까

by quitter

12월 31일,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려는 순간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질문 하나. "올해도 이렇게 보냈구나."


1월의 새해 다짐이 아직 생생한데, 어느새 겨울이다. 봄에 피운 계획들은 여름의 더위 속에 흐려졌고, 가을이 오면서 '올해는 이제 끝났다'는 체념 섞인 인정을 했다. 그리고 지금, 정말로 끝이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라졌을까

어릴 적 여름방학은 영원할 것 같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세상 전부였고, 그 안에서 우린 무한히 많은 일들을 했다. 그런데 지금의 한 달은? 출근하고, 퇴근하고, 주말이 오고, 다시 월요일이 오는 사이 사라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비례 이론'으로 설명한다. 10살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30살 어른에게 1년은 3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적으로 1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루틴의 반복, 새로운 경험의 부재, 기억할 만한 순간들의 부족. 우리는 너무 바빠서 오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내일로 넘어간다.


기억나는 건 몇 장면뿐

2025년을 돌아보면 선명한 장면이 몇 개나 될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쳤던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던 저녁, 혼자 영화관에 갔던 주말,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었던 순간. 손에 꼽을 정도다.


나머지 350일은? 그저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다. 특별할 것 없었던,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날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갔다.


그래도 우리는 살았다

빠르게 지나갔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다.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루틴 속에서도 조금씩 성장했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2025년이 아무리 빨리 지나갔어도,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걸음이었을지라도.


2026년은 조금 다르게

새해가 되면 또 다짐한다. 올해는 좀 더 천천히 살겠다고.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살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알고 있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오면, 또다시 시간의 속도에 휩쓸릴 거라는 걸.


그래도 괜찮다. 완벽하게 살 순 없어도, 조금은 의식적으로 살 수 있으니까. 가끔은 멈춰 서서 오늘을 기억하려 애쓰고, 작은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바쁜 와중에도 '지금 여기'를 느끼려 노력하면 된다.


2025년 12월 31일. 이토록 빠르게 지나간 한 해를 보내며, 우리는 또 내일을 맞이한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하기 위해.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겠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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