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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더밍 Jun 11. 2020

더이상은 좋아해서 힘들지 않기

                                            

  지난 수요일에는 서울에 다녀왔다.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게 되 고양이를 볼 겸 서울나들이를 다녀오게 되었다. 사실 이번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평소 애정하는 가정식패브릭(의류 브랜드)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두번 열리는 가게는 서울가는 일정이 없으면 차비와 수고로움이 커 사실상 갈 수가 없었고 내 일정이 생겨 서울에 가도 쉽사리 문을 열지 않는 곳이라 몇년의 시간동안 한번도 직접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고양이를 핑계로 가정식패브릭 오픈일에 맞춰 서울을 가려 여러번 시도했으나 동생의 일, 집안일, 회사일로 번번히 미뤄졌는데 특히 이번에는 2월부터 사장님께 블로그 댓글로 오픈일정을 연달아 물어보며 만남을 약속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번번히 그 약속이 취소되었다. 그러다 결국 오픈하지 않는 날에 서울에 가게 됬고 어쩌면 열어주실지도 몰라, 라고 나 혼자 속편히 생각하면서 서울의 일정을 죄다 가정식패브릭 주변으로 잡게 되었다.


  다행히 서촌은 내가 반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했고 다시 찾고 싶은 것들이 많은 동네라 좋은 여행 장소였다. 사직동그가게에서 커리와 짜이를 마시며 스물언저리의 인도를 회상하다 짝꿍은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것봐, 저것봐 하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떠들다 갑자기 센치해져 흘러버린 시간을 앞에 두고 침묵에 잠기기도 하면서 여행의 시간을 이어갔다.


  배불리 먹고 마시며 소진된 체력을 보충한 뒤 본격적으로 진짜 내 목적이었던 가정식패브릭을 향해 걸었다. 오픈하지 않는 날에 무턱대고 방문하는 건 큰 민폐라는 짝꿍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는 길에 가정식패브릭이 있다며 잠깐 들러나 보자고, 혹시 열어주면 구경하면 되지! 라며 민첩하게 발을 놀렸다. 한숨을 푹푹 쉬며 어쩔 수 없이 따라 오는 짝꿍을 뒤로 한 채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싫어하는거냐는 말은 속으로 삼키며 신난 발걸음으로 휘적 휘적 걸었다.


  도착한 가정식패브릭은 블로그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찾는데 한참을 두리번거릴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와있다는 설렘에 기분이 좋아졌고 유리문 앞에서 무작정 노크를 시전했다. 분명 조명은 켜져있고 간간히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조금 크게 저기요, 라고 외쳤으나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내가 왔음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 건물 사방을 둘러봤으나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짝꿍은 이미 내 행동에 질린다는 듯 저만치 멀어져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간 이곳에 오고 싶어 댓글로 물어보고 인스타로 애정을 쏟았던 나는 그 장소를 쉽게 떠날 수 없어 마지막으로 문고리를 잡아 열어보았으나 굳게 잠겨있었다.


  내가 옷을 안산다는 것도 아니고 입어보고 여러개 사고 싶어서 온 건데 이렇게까지 굳게 잠가둘 일인가 하는 원망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이제는 정말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 멀리서 한옥을 구경하고 있는 짝꿍에게 돌아갔다. 아쉬움에 어쩔 줄 몰라 서운한 마음으로 투덜거리며 실패했다고 이야기했더니 짝꿍은 내 행동에 너무 화가 난다며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나도 속이 상해 죽겠는데 왜 당신이 더 화가 난다고 하는지 섭섭한 마음이 배가 됬지만 얼굴을 보니 잔뜩 구겨진 상태로 보는 내가 다 괴로운 마음이 들어 일단은 사과를 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삐죽거리던 마음이 진정 된 짝꿍은 내게 가정식패브릭 주변을 서성거리던 네가 너무 안타까워서 화가 났다고 했다. 그냥 인터넷으로 사면 될 일이고 저렇게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를 안하겠다는데 왜 자꾸 기웃거리며 안달난 강아지처럼 쩔쩔매냐고. 옷을 사는 네가 아쉬울 일이 아닌데 무례를 범하면서까지 몇달을 앓아가며 속상해하는 네가 한마디로 짠해서 화가 난거라고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정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왜 그렇게 목을 매는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종종 그런 것들이 있다. 너무 좋아서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좋아하는 일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기다림과 상대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기대. 그 대상은 물건이거나 그 물건에 깃든 사람일 수도 있다. 찌질해지는 것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집착처럼 보일 수 있는 나의 질척거림. 힘들때도 즐거울때도 필요 이상으로 격해진 감정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 파고들고야 마는 내 감정. 발걸음을 떼 조금은 진정된 상태로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나를 지켜보며 힘들어 한 짝꿍과 자꾸만 시공간을 침범해 난처했을 가정식패브릭 사장님의 얼굴이 그려지면서 이제야 조금 머리에서 가슴으로 알 것 같다. 열렬한 애정공세란 나의 피어나는 좋아함을 광적으로 표출하는게 아니라 때론 부동의 자세로 한 나무처럼 뜨거운 햇살을 묵묵히 받아내는 일이란 것을.

  그래서 오늘은 튀어오르는 기운들을 내 안에 가둬 다소 둔해지더라도 오래 오래 느낄 수 있는 연습을 하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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