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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Apr 01. 2023

언양 작천정 벚꽃길

루비로 영글어 흑진주로 맺음 하다


전국 여기저기, 때 이른 벚꽃들이 활짝 피는 바람에 보기 힘든 진풍경을 만들어 냈다. 지나온 봄을 돌아보면, 매화 피고 지고, 영춘화와 목련에 연이어 개나리 마저 피고 져야 비로소 흐드러지는 벚꽃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 개나리 꽃이 채 낙화하지 않았는데 벚꽃이 피는 경우도 있긴 하였지만, 초록 잎 한 점 없이 옴팡지게 샛노란 개나리와 쑥버무리 마냥 뭉쳐진 벚꽃이 함께 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개나리는 일조량이 중요하고, 벚꽃은 기온을 중요시하는 차이점 때문이다.

가로의 옹벽을 차지한 개나리가 미처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기후 탓에 족히 일주일 이상 빠르게  벚꽃들이 깨어났다.

작천정 벚꽃길

전국적으로 유명한 벚꽃 길이 많이 조성되어 있으며, 영남알프스 간월산 진입로의 "작천정 벚꽃길"도 많은 분들이 매 년 방문하시는 곳이다.

언양 메가마트 맞은편, '작천정'계곡 입구에 있는 벚꽃길인데, 수남 벚꽃길이라고도 불리며 양산 원동의 매화가 질 무렵, 바통을 이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도로라서 약 1km 남짓 조성된 벚꽃 터널을 만끽하며 걷기에 좋다.

더군다나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주변에는 식당가, 카페, 화장실, 야외캠핑장, 편의점 등등 편의시설도 꽤나 잘 형성되어 있다.

이 벚꽃길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경남 진해의 여좌천, 경화역 벚꽃이나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들과는 태생이 많이 다르다. 다른 곳은 유희를 제공하거나 관상용을 목적으로 관의 주도 하에 심어졌지만, 이곳은 1937년을 전후해 다소 특별한 식목이 이루어졌다.

당시, 언양 독립운동의 중심축은 천도교였다. 그래서 벚꽃길이 끝나는 곳과 연결된 산 위에는 "인내천"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곳의 식목이 특별한 이유는, 대개 이러하다.

독립운동을 논의하기 위해 울산지역의 천도교 독립운동 지사들은 모임을 가질 너른 장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일경과 밀정들의 집요한 감시 탓에 모임이 쉽지 않았고, 감시망을 피해 회합을 이루려던 독립운동가들이 생각해 낸 꾀가 바로, 한창 유행처럼 번지던 벚꽃놀이였다.

식재할 나무를 사러 가면서도 모이고, 나무를 옮겨 오면서도 모였다. 일경이나 밀정들도 처음에는 양산과 경주를 오고 가는 요시찰 인물들을 의심했지만, 이내 그들의 목적이 벚나무 구매라는 것을 알고 감시의 눈길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옳다구나. 얼씨구, 지화자 좋다!

나무를 심으면서도 모이고, 길을 내면서도 모였다. 꽃이 피면 더 좋고, 나무 그늘이 생기면 천렵을 핑계 삼아 모여 독립의 웅지를 나누었다.

당시는 일본이 정책적으로 자두나무들을 베어내고 벚나무를 관이 앞장서서 식재하는 분위기라 의심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300그루 이상이 도열해 있는 꽃터널이지만, 처음에는 나무 살 돈이 모자라 이리저리 사비를 갹출해 양산읍에서 심고 남은 스무 그루를 헐값에 구매해서 심었다.

묵은 세월 탓인가, 핑크빛이기보다는 흰빛에 가깝다 보니 조명을 잘 받는 편이다. 한 세기를 훌쩍 지나 살아온 나무들이다. 축제 때 몰려드는 수만 명의 인파와 밤새 쪼사대는 조명 탓에 나무들이 보통 피곤한 게 아닐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끝나고 처음 열린 행사이다 보니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축제 전에는 주변에 설치된 불법노점상들을 철거하면서 엄청난 마찰도 있었다.

그런데 강제대집행 이유가 "자연공원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노점행위"였기 때문이라고 다.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바꿔가며 숲을 파괴하는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울주군수가 자연공원 보호법을 들고 나오다니... 이러니 개그콘서트의 부활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군수라는 임시직 공무원이 산신령 쪽박을 깨는 것도 모자라, 개그맨들 밥그릇까지 뺐는 지경이말이다. 


수령이 대략 110년 정도 되다 보니 여기저기 몸통이 썩고, 속이 비어 대부분이 약품처리를 하고, 외부는 시멘트로 방부처리를 하여, 지속적인 약품처리로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새 생명이 비집고 나온다. 인간들의 병약함은 우람한 나무들에 감히 도전장을 낼 수도 다.

세월은 흐르고, 독립지사들도 아니 계시지만, 그들이 가꾼 벚꽃단지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게 되었다. 언양시장(2.7장)과도 아주 멀지는 않아서 콧바람 코스로도 좋습니다만, 아쉽게도 이제 꽃잎이  비 되어 날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리해야 빨간 루비도 맺히고 영롱한 흑진주가 영글 것이다.

과일이나 생선회가 그러하듯 뭐든 제 철이 제일 좋다. 서울 윤중로에 활짝 피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구미, 대전 정도에서는 만개상태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두르시지 않으면 내년까지 기다려이 장관을 맞이할 수 있다.

행여, 이 길에 오시거든 눈으로 마음으로, 겨레를 향한 애국애족이 피어남을 즐감하시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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