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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Jul 20. 2024

수렴의 시간

최성자 시조집 / 讀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가운 하늘 모습과 함께 반가운 소식이 동시에 전해지는 행운이 얼마나 될까,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버프로 인해 어렵지 않게 생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내내 이어지는 긴긴 장마, 오전 출장길에  나설 때만 해도 온통 사위가 시커먼 먹구름이었는데, 마침내 먹구름이 걷히고 환한 하늘이 열렸다. '그래 진짜 하늘색이 저렇게 아름다운 색깔이었지'라며 감탄하는 찰나, 손목의 워치에서 가벼운 알림 진동이 온다.


"최성자 님께서 보낸 등기가 전달되었습니다..."


최성자 교수님!

시인이자 시조시인, 그리고 수필가로 활동 중이신 지인이다. 잦은 교류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친필 서명이 담긴 소중한 시조집 <수렴의 시간>을 보내 주셨다.


지인들을 통해 시집은 가끔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현대시조집은 그렇질 못했다.

일전 인문학 콘서트에서 뵈었을 때, 시조집을 출간하신다는 소식을 들은지라 다소의 궁금함이 있던 터였다. 

그날 낮에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해외 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UN기억 공원에서 여러 지역에서 오신 참가자들과 함께 숙연함을 나누고, 행사 후에는 음악가인 부군과 함께 짭조름한 광안리 밤바다에서 펼쳐진 드론쑈를 즐기며 좋아라 하셨던 생각이 난다.

하필이면 광안리 근처를 지나는데 이리 맑은 하늘과 소포를 보내주셨으니, 우연이라 치부하고 흘려버리기엔 시간이 너무도 딱 들어맞는다.


<수렴의 시간>


작가의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을 수렴하여 정리한 것인지, 아니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한 걸음 비껴 나 발을 드리운 채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것인지, 얼핏 제목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제를 <화花. 양樣. 연年. 화華>로 묶음 하신 것과 "과거와 미래가 지금이 된다"는 '시인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아무래도 오랜 단상들을 모으신 듯하다.


내가 만났던 최시인은 그 누구보다 눈망울이 크며 깊고 아름다운 분이다. 언젠가 보았던 파미르고원의 산상호수 카라쿨리 호수처럼 맑고 깊은 눈이다. 열린 하늘 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실 땐  항성들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이며, 찰나라도 생각에 젖어들라치면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호수처럼 깊은 눈이고, 아직 본 적은 없지만 눈물을 흘리신다면 필시, 송아지와 작별하는 어미소의 젖은 눈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스윽 펼쳐 단숨에 몇 수 읽으며 품어 본 시조는 시와 시조의 경계를 가름하기 모호하다. 고문(古文) 시간에 배웠던 한시처럼 오언칠구로 갈고 쪼아 낸 형식적인 익숙함이 없고, 향가처럼 삼구육명으로 끊고  잘라 내어 틀에 갇힌 대구(對句)가 없다. 하지만 묘하게도 시를 접할 때와 다른 방식의 사유를 요구한다.


한 편을 펼쳐 읽으니 다음 편이 궁금하다. 낯설 것이다고 생각했지만 낯설지 않은 소재들.

시조집의 한 편, 한 편을 씹다 보니 자꾸만 뭔가 목에 걸린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조금 지난 후에 보니 그것은 익숙한 것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디테일한 낯선 시선이 불러온 사유였다.

들에 핀 화려한 꽃 말고 그 밑에 이름 없는 들꽃, 휘영청 둥근 보름달보다는 "맘고생으로 뾰족 얼굴"을 가지게 된 초승달, 그리고 오늘을 화양연화로 가름 짓게 해 준 옛사람과 지난 시간들...


시선이 닿는 곳이 다르니 언어가 다르다.


나도 모르게 자꾸 작가가 함께 보자고 속삭이며 가리키는 것들을 보게 된다. 작가의 시어는 함께 취해 보자고 꼬드기어느새 마음속으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와서는 한 자리를 차지한다.

가을밤 p84

작가가 수렴해  정리한 수많은 상념의 조각들은 그냥 한 개인의 문학적 고뇌만은 아니다.

낮과 밤, 고독과 상생,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 꽃과 나무 그 다양한 상념들을 지금 쯤은 한 자리에 수렴(收斂)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인문학 동지들을 향한 엄중한 문학적 권고이자 명령이다.

내가 흘려 보던 소재의 가벼움에 작가의 섬세한 마음 짓이 더 해지는 순간, 나로 하여금 늘어 뜨린 발 뒤에서 세상을 달리 보는 수렴(垂簾)의 시간을 갖게 한다. 그저 미사여구로만 치장된 글놀음이 아니고, 중년의 여인이 교양을 뽐내는 여유만이 아니다.

글짓 한 마음짓을 만날 때마다 작가의 긴 밤이 느껴지고, 달을 담아 세상을 희롱하는 시인의 찻잔과 사람에 대한 짙은 반가움, 그리고 미미한 것들에 관한 깊은 존중이 느껴진다.


작가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왔으니 이제 먹색 선명한 수렴의 시간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되었다.  어떻게 읽고 해석하든 그것은 나의 자유이자 나의 세상이다. 그럼에도 시인의 기억이 느껴지고, 시인이 보낸 깊은 성찰의 시간이 느껴진다. 대개가 그렇듯이 저마다의 웃음 뒤엔 슬픔도 있고, 이쁜 말 뒤엔 깊은 상처의 시간도 있다.

그녀의 기쁨과 그녀의 슬픔, 그녀의 즐거움과 그녀의 고독을 수렴한 소중한 마음짓이다. 게다가 누군가의 기억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수렴의 시간>은 최시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녀의  기억을 함께 걸으며 내 주변에 방치된 상념들을 수렴해 볼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대받은 것은 분명 나에겐 과분한 영광이다. 늘 문운(文運)이 상승하시길 합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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