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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29. 2024

과연 그녀는 남편을 몰라봤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권태가 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삶은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 당연히 대답은 “그럼!”이다.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주춤댄다면 이미 당신은 진 것이다. 하얀 거짓말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그럼'이라는 대답에는 실제로도 그렇다는 긍정의 의미가 담겨있다. 혹, “아니!”라고 대답할 때는 다음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라는 의미가 있겠다. 


  『옹고집전』은 누구나가 다 아는 전래동화다. 부자인 옹고집은 어마어마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심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놀부와 하는 모양이 비등한다. 그런 집에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서 시주를 부탁한다. 그러자 욕을 해대며 시주승을 매질하여 돌려보낸다. 이에 화가 난 도승이 큰 쥐로 가짜 옹고집을 만든다. 진짜와 가짜가 너무 닮아서 아무도 누가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진짜 옹고집은 억울하기가 한도 끝도 없어서 관가에 소송을 낸다. 원님은 집의 살림살이와 조상들의 이름자를 물어보고는 대답하지 못하는 진짜 옹고집을 가짜로 재판한다. 쫓겨난 진짜 옹고집은 결국 스님을 찾아가서 잘못을 빈다. 해결책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앞에 두자, 가짜 옹고집은 쥐로 변해 도망갔고 제자리를 찾게 된 옹고집은 재산을 베풀며 오래 잘 살았다.


  이 이야기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나누고 베풀어라.’라는 교훈을 준다. 재산이 억만금이 있어도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을 몰라보고 홀대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주변 사람들도 다 옹고집을 욕한다. 배려라고는 없는 그의 모습에 이웃 사람들도 등을 돌린다. 쥐를 사람으로 둔갑시켜 반성하게 하는 장면은 일종의 변신담이기도 하다. 집안의 세간 살림살이를 모두 다 알고 있는 남자는 없지 싶다. 게다가 증조부, 고조부 이름이 아니라 할아버지 이름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가짜 옹고집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나중에 진짜 옹고집으로 밝혀진 옹고집은 아내에게 어떻게 남편도 몰라보느냐고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는 정말로 남편을 몰랐을까? 아마도 아내는 진짜와 가짜를 진작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자린고비인 진짜 옹고집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시집와서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를 늘 고민하지 않았을까? 처음엔 진짜 옹고집이 아내에게 잘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시들해졌을 것이고, 아내는 '이참에 확 남편을 바꿔봐',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뒷모습만 보여준 게 아닌가, 이러다가 영영 잊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실 나도 아내가 요리하거나 설거지하는 뒷모습만 보았으니, 앞모습을 본 적이 오래전이기도 하다. 이러다가 아내가 “당신 누구세요?” 하는 날이 오면 나는 누굴 찾아가야 할까? 요즘엔 믿을만한 도사도 없고 스승도 없으니, 인터넷이나 AI에게 물어봐야 하나 걱정이다. 지금부터라도 처음 만날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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