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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Mar 04. 2024

책 읽는 아버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 항상 일을 핑계로 늦은 귀가를 하고 주말에도 취미생활로, 술자리 약속으로 바빴다. 집에 아이들과 아내만 남겨둔 날이 많았다. 지금 그때를 떠 올리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세월이 지나서 큰아이는 전공을 살려 제 밥벌이하고 작은 아이는 제 앞길을 준비 중이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아이들을 위해서 집을 옮겨 다닌 한 어머니에 대한 옛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시골 대갓집의 하녀였다. 어느 날 주인어른이 죽자, 옛 친구라며 한 스님이 찾아와 친구를 위해 명당자리를 점지해 주었다. 하지만 장손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 묘를 썼다. 저녁상을 나르다가 하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고 그 자리에 자신의 아버지 유골을 몰래 가져가다 묻었다. 이장한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운 나머지 하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로 도망을 갔다. 두 사람은 밤낮으로 길쌈을 했고 솜씨가 좋아 소문이 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실부모하여 떠돌아다니던 몰락한 양반가의 총각을 남편으로 얻었다. 세 아들이 말문을 틀 즈음 그녀는 정승 집 옆으로 집을 옮겼다. 아내는 글을 모르는 남편에게 사시사철 사모관대를 갖춘 후 주역을 펼쳐놓고 글 읽는 시늉을 하라고 했다. 물론 아이들도 밤낮으로 아버지를 따라 책을 읽었다. 곧, 옆집 사는 정승이 소문을 듣고 그를 대단한 학자로 예우해 주었다. 후일 그의 세 아들은 판서와 정승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본래 명당이야기다. 명당이란 자손들이 조상을 좋은 곳에 모시면 후대가 복을 받는다는 곳이다. 복 중에 최고의 복은 당대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후대나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녀는 믿음이 있었다. 대갓집의 장손은 스스로 좋은 곳을 택했지만, 하녀는 스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믿음만으로 후대가 복을 받는 일은 없다. 바로 행함이 있었다. 모녀는 부지런히 길쌈을 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다. 서울 한복판 정승이 사는 명문가 옆으로 이사를 할 정도였다면 모녀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명약관화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내의 덕이려니 하겠다. 지혜롭고 성실한 아내로 인해 한 가정이 명문가가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정작 이 글의 주인공은 남편이 아닐까? 여름이나 겨울이나 때를 가리지 않고 사모관대를 갖추는 일이 여간해서는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한여름의 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터 여러 겹의 복장이 거추장스러웠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땀이 물 흐르듯 흘렀을 것이다. 게다가 옛날이었으니 지금처럼 의자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수십 년 동안 한자리에서 뜻도 모르는 글을 읽는 체했다. 우둔하지만 그의 아내 사랑이 대단하다. 어지간한 공처가는 얼굴 내밀기가 어렵겠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이나 명작을 보면 아버지의 부재가 부지기수다. 신데렐라의 아버지도, 장화 홍련의 아버지도 존재가 유명무실하다. 춘향의 아버지 성진사는 모녀를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게다가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는 자신을 위해 딸을 공양미 삼백 석에 넘겼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하는 셈이다.


  나도 전자의 아버지들과 마찬가지였다.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뒷북을 치는 것 같지만, 요즘엔 글쓰기와 독서 모임을 기웃거린다. 뒤늦게나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어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먼 훗날 어떤 아버지였느냐는 물음에 책 읽는 아버지로 기억된다면 그보다 더 찬사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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