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참으로 편하다. 나 혼자 좋아하다가 나 혼자 그만두면 된다. 상대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야 상처를 받지만 정작 상처를 준 상대는 자신이 상처를 준 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잊어도 되고 언제든 떠 올리면서 혼자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다가 헤어지면 그 마음의 생채기가 오래간다.
『고운당필기』 제2권에 꽃을 사랑하는 이유에 관해 적은 글이 있다.
한두 해 전부터 나는 꽃나무 심기를 좋아하여 서재 앞에 울긋불긋하게 대략을 구비하였다. 퇴근하고 나서는 관복을 벗자마자 꽃나무 주위를 돌며 읊조리느라 혹 손님이 와도 알지 못했다. 무관 이덕무가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꽃이 뭐가 그리 좋은가?" 내가 말했다. "반평생을 정 때문에 시달렸지요. 내가 좋아하건 남이 좋아하건 간에 얽매여 벗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새와 짐승도 먹여서 길을 들이고 나면 반드시 그 주인을 사랑하지요. 꽃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을 주어도 저들은 덤덤하니 정이라고는 없지요. 그래서 좋답니다." 무관은 잠자코 있다가 다음날 이문원(摛文院)에 동료들이 다 모였을 때 비로소 내 말을 언급하고는 찬탄해 마지않았다. 아마 밤중에 깊이 생각해 본듯하다.
옛 선인들의 꽃 사랑은 끝이 없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기개를 말하는 사군자를 비롯하여 향기가 없는 꽃 목단이나 심지어는 지방 시골에 혼자 피어난 야생화도 시로 읊고 일상의 이야기 주제로 삼았다. 『고운당필기』의 저자인 유득공이 그만 꽃 삼매경에 빠졌다. 만사를 제쳐 놓고 꽃만 쳐다보자 ‘조선의 선비’ 이덕무가 왜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이덕무의 말은 꽃 좀 그만 쳐다보고 일도 좀 하고 사람도 좀 만나라는 질책이기도 하다. 그러자 유득공은 세상 만물 모두가 저를 사랑하면 반드시 답이 있는데, 꽃은 아무리 사랑해 주어도 무덤덤하니 정이 없다고 말한다. 문자 그대로만 본다면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기 마련인데, 꽃은 사랑을 받기만 할 뿐 아무런 응답이 없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서두를 살펴보면, ‘퇴근하고 관복을 벗자마자 꽃나무를 들여다보느라 누가 와도 알지 못했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유득공은 아마도 이 즈음해서는 그만 관직이 싫어진 것 같다. 얼마나 일이 싫었으면 ‘퇴근하고 나서는 관복을 벗’어 버렸는지, 꽃을 보러 가기 위해 옷을 벗어 던지는 속도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그만큼 하나에 꽂히면 집중하는 유득공의 자세를 알 수 있다. 퇴근하기가 바쁘게 꽃을 심고, 꽃을 가꾸고, 꽃을 돌보았다고 하니 그의 꽃에 대한 사랑이 지극할 정도다. 꽃을 왜 좋아하냐는 이덕무의 질문에 그가 한 말이 걸작이다.
"반평생 정 때문에 시달렸지요."
사실 그는 ‘서얼’ 출신이었다. 조선의 서얼은 첩에서 난 ‘서자’와 신분이 천한 종에게서 난 ‘얼자’를 합쳐서 서얼이라고 불렀다. 유득공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서자였으므로 유득공은 저절로 서얼의 신분을 가졌다. 시와 문학에 뛰어났으나 서얼 출신이었으므로 신분의 상승에 한계가 있었다. 임금(정조)과의 정이 매우 두터웠으나 지방의 외직으로만 주로 돌았는데 이유는 신분 때문이었다. 진작 모든 걸 내려놓고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임금과의 정 때문에 선뜻 관직을 그만두지 못했다.
유득공이 좋아한 것들은 모두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것들이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는 사랑할 때는 가만히 있어도 찾아온다. 그러나 싫어하게 되면 매몰차게 떠난다. 사랑을 해 보아서 알겠지만, 열띤 사랑의 시절에는 한 시라도 떨어지기가 싫고 같이 있고 싶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사랑이 식으면 꼴도 보기 싫은 것이다. 꽃과의 사랑은 짝사랑이다. 저 혼자 피어있으면 그저 사람이 다가가서 예쁘다고 한다. 유득공 혼자만의 사랑의 대상이다. 꽃은 그저 흔들릴 뿐, 아무런 대꾸가 없다. 무심한 꽃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가 받은 상처를 치유한 셈이다. 그러니 꽃을 좋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