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법의 기초
앞 절에서 집중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중요한 정보에 집중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 우리의 뇌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그걸 담아서 기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장이 돼서 나중에 꺼내 쓸 수 있겠죠. 하지만 그냥 우리가 글씨를 읽는다고 해서 그게 술술 외워지는게 아니잖아요.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훨씬 복잡합니다. 이를 처리(processing)과정이라고 해서 심리학과에서 는 따로 비중을 두어 다룹니다.
정보를 잘 기억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같은 정보도 더 자세하고 정교하게 다루면 더 잘 기억합니다. 이를 ‘깊은 수준의 처리’라고 합니다. 어떤 지식을 그냥 단순히 암기하는게 아니라 그 의미를 신중하게 음미해 본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보통 영어 단어를 외울 때 apple은 사과, apple은 사과라고 반복 암송법을 많이 쓰죠. 이렇게 해도 외울 수는 있지만 ‘뉴턴은 사과를 보며 중력을 생각했다’라는 문장 안에 apple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문장을 만들어 본다면 나중에 더 기억이 잘 날 겁니다. 기억하려는 과정에서 사과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역사도 암기과목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세종대왕때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정조대왕때 수원 화성을 지었다라는 식으로 표나 도식을 만들어 외우곤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단순히 소리나 글자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각하면 어떨까요? 세종대왕이 무슨 이유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훈민정음의 글자 형태가 어떻게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었을지, 정조대왕은 어떤 군사적 목적으로 수원 화성을 쌓았을지 곱씹어 보는 겁니다. 이렇게 어떤 정보에 의미를 싣게 되면 빨리 기억되고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교과지식에 어떻게 하면 의미를 담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공부법에서는 ‘설명하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보라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서 동생에게 설명한다고 해 봅시다. 세종대왕이 어느 시대 왕이고, 무슨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에는 무슨 문자를 쓰고 있었는지 알아야 동생이 이해하게 해설해 줄 수 있습니다. 설명을 준비하다 보면 관련 있는 역사적 지식들을 스스로 익히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 사이의 빈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설명을 다 하고 나면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는 지식이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무언가를 암기해서 자신의 기억회로에 저장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그걸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걸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말문이 턱턱 막힙니다. 해당 지식과 연결되는 주변적 사실들을 다 숙지하고 있어야 다른 사람을 가르쳐 줄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익힌 지식을 우리는 ‘살아있는 지식’이라고 합니다. 지혜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가치있는 앎이 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같은 지식을 암기하기보다 이해하고, 이해하기보다 설명할 수 있고 써먹을 수 있게 익혔다는 겁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요령이 이 절의 제목처럼 기억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오래 유지되며 쉽게 꺼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공부의 첫 번째 왕도가 선택과 집중이라면, 두 번째 왕도는 깊이있는 학습입니다. 학교에서 무언가 들을 때 꼭 ‘왜?’라고 자문해 보시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도 구하시고, 알았다고 느낀다면 친구들에게 설명도 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학습한 내용의 본질을 깊이 처리하게 됩니다. 바로 잘 외우는 사람이 되는 방법과 수준 높은 지식인이 되는 길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