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성격의 요람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이 뭔가요? 인간의 기억은 보존된 기간이 짧을수록 선명하기 때문에, 태어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의 기억은 흐릿하고 모호할 겁니다. 인간의 과거는 말로 풀어지거나 글로 적히는 등 언어의 형태로 바꿀 수 있다면 마음속에 잘 저장됩니다. 최초의 기억은 말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만들어졌겠죠. 그러니 당연히 가물가물한 형태로 남아 있을 겁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최초의 기억‘이 그 사람의 성격 형성 과정에서 큰 의미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기억이 따뜻하고 온정적이거나 즐거웠다면 세상을 밝게 보고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외롭고 무서웠다면 그때 체험했던 정서를 간직하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최초의 기억을 묻는 기법을 종종 사용합니다.
왜 어린시절의 정서가 지속될까요? 그것은 뇌라는 정보처리기관의 특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수없이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집니다. 이때 들어오는 일차적인 정보를 감각 정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감각기관에 입력된 바를 있는 그대로 느끼지 않습니다. 모든 감각 정보는 해석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죠. 이 과정을 지각이라고 합니다. 빛이 가려져 벽에 생긴 검은 얼룩을 대부분은 그림자로 보지만 이를 귀신으로 보는 사람도 있듯이 말이죠. 지각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보는 것이 뇌에서 가공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그게 진실이라고 믿죠.
이 지각과정은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빚어져요. 색안경처럼 우리 뇌에 씌워집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라는 말이 있죠. 유사한 자극인 솥뚜껑이 자라로 해석되는 것이 지각과정입니다. 정서도 마찬가지에요. 과거에 사랑받았던 아이는 커서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의 의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타인의 태도도 과거 부모님과 관계를 참조해서 평가하니까요. 반면 학대받았던 아이는 누군가가 하는 아무 뜻 없는 말에서도 자신에 관한 비난을 발견합니다.
게다가 이 경험은 강렬하기까지 합니다. 어린 아이는 약하거든요.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면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힘 있는 어른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떤 운명이 닥칠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같은 상황도 어릴수록 더 무섭고, 외롭게 느껴지겠죠. 나이가 먹어가며 스스로를 챙길 능력이 생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서조절이 쉬워집니다. 덜 심각해지거든요. 그러나 제가 앞에서 말했듯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부정적 감정이 너무 강하다면 해석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동일한 자극에도 다른 사람보다 더 고통받는 성격이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지금 느끼는 것. 그게 정말 진실인가? 혹시 세상을 왜곡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구요. 이런 고민을 깊이 하고 자신을 격동시켰던 상황을 다시 떠올릴 때 가끔은 의아함을 느낄 겁니다. ’내가 왜 그랬지?‘라구요. 그런 느낌이 바로 ’자각‘, 심리치료가 시작되는 신호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라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심리치료를 과거의 생채기를 아물게 하는 것에 비유를 많이 하잖아요. 건강한 피부에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 사물을 상처 부위에 대면 쓰라리죠. 사람 마음도 똑같아요. 세월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한다면, 내면이 찢어지며 생긴 이 자국은 저절로 아물지 않습니다. 무던해지고, 잊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속 깊은 곳에서 자꾸 고통을 줘요. 상담전문가들은 더 이상 무기력한 아이가 아닌 ’성장한 내‘가 과거의 아팠던 ’어린 아이인 나‘를 떠올리며 위로하는 것이 치유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도가 계속된다면 모든 상황을 편파적으로 어둡게만 해석하는 내 마음의 결도 드러날 겁니다. 그리고 지각과정에도 변화가 생기겠죠.
물론 이런 모든 과정을 몇 줄의 글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원리와 심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치료 방법을 최대한 간결하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진짜 심리치료는 상담선생님과의 동행을 통해 시도해야 훨씬 효과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