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립재단 중학교에 다녔다.
집에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냥 그 동네 애들이 랜덤추첨(일명 뺑뺑이)으로 진학하는 그저 그런 여자중학교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거의 6.25 때부터 교편을 잡아온, 그야말로 고인 물 천지였다.
단 하루도 체벌을 안 받고 넘어간 적이 없으며 방학 때는 죽어라 숙제를 내주던, 딱 90년대 학교 그 자체.
중학교에서의 기억이 너무나 지긋지긋했던 나는 연합고사를 본 뒤 1순위로 인근의 공립여고를 지망했는데 이야... 그곳은 완전히 천국, 속칭 파라다이스(라고 쓰고 개꿀이라고 읽음)였다.
나는 공부는 뒷전으로 한 채 동아리 활동에 올인했다.
그밖에는 매일매일 만화책을 읽거나,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빌려오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낙서를 끄적이거나... 아무튼 제대로 공부를 한 기억은 없는 걸 보니 노는 게 일과였던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이 항상 편했다.
내가 도망쳐온 낙원엔 체벌이 없었기 때문에.
물론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선생님도 계셨고 숙제를 안 해오면 교실 뒤로 가서 손을 들고 서있는 등의 벌은 받았지만 내가 중학교 때 당했던 '폭력'의 수위를 떠올리면 그까짓 것 무더운 여름밤, 잠자리에서 모기한테 한두 방 물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우리를 때리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학업에도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난 가르칠 뿐. 너희가 알아서 따라오든지 말든지.
그들 대다수가 명문대 출신이었고 발에 채이는 게 SKY였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그들은 수업을 하다 멈추고 오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곤 했었는데 그것은 마치 유인원을 대하는 인간의 눈빛과 흡사했다고 기억된다.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지?
어떻게 이걸 이해 못 할 수가 있지?
하는 얼굴로 눈 풀린 빡대가리 45명의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특히 나의 고3시절 담임선생님도 서울대 수학과 출신이셨는데 한 번은 내가 어느 모의고사에서 찍신이 강림하여 '수리 1'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점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문과 전국구 상위 퍼센트 찍음)
그런데 얼마 후 진학 면담시간에 의기양양하는 나에게 그래, 이 정도 점수는 기본이지.라는 스탠스여서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그의 기대를 저버린 채 11월의 수능에서 원래의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왔다.
그는 우리 부모님에게 내가 수능에서 실수로 '수리 1'을 망쳤다는 망언을 했고 나는 경악을 했다.
얘가 이(따위) 점수를 받을 애가 아닌데 긴장했나 봅니다.
아니, 선생님! 심해에 처박힌 내신 성적의 히스토리를 보면 그게 원래 실력인 걸 아시잖아요?
왜 현실도피하십니까! 학생의 점수를 직시하십쇼!
그러나 침통한 그의 얼굴을 보며 차마 그런 반박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도 어찌어찌 운이 좋아서 간신히 대학은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나에게 낙원을 제공한 고교시절 덕분이다.
선생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