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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Aug 09. 2021

내게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14

 

 아이를 낳고 100일의 기적을 맞이할 때까지 짐승 같은 삶

 지속되었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말을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육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한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 잠들었고 또 언제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을지 모를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기저귀를 갈아달라, 젖을 달라 보채며 울어재꼈다. 엄마인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듣고 굶길까 봐 그러는지 목청도 대단 했다.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배변도 맘 놓고 못하다 보니 심신 이 닳는듯하고 피골이 상접해졌다. 잘 때는 방향만 반대로 틀어 억 소리가 절로 났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무거운 바 위가 허리를 가격하는 착각이 일만큼 통증이 느껴한두 시간 자다 깨어 아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그 행위를 기계처럼 반복하며 '내가 이러려고 엄마가 된 건가' 싶었다.


 육아에 시달리다 보니 문득 나보다 일찍 지옥 육아의 뜨거운

맛을 본 여동생이 떠올랐다. 육아로 지쳐 웃음을 잃어버렸던

동생, 살이 쑥쑥 빠져 볼이 움푹 파인 채로 다녔던 모습....


 그때도 엄마는 여전히 바빠서 육아로 지친 여동생에게 도움

을 줄 수 없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로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끼기 전까지 우리 자매는 엄마를 이해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다.



 

 솔직히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를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같은 부모로서 너그럽게 넘기고 싶었다. 엄마가 얼

마나 견디기 버거운 인생을 살아왔는지 짐작돼서, 같은 여자

로서 엄마가 가엽고 안타까워서 그랬다.


 아무리 내가 엄마 뱃속에 머물렀어도 엄마라는 여인의 내면

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탯줄로 받아먹은 것은 엄마가

먹은 음식이고 귀에 요동치는 것은 엄마의 심장소리였지,

엄마의 생각과 마음까지 받아먹었을까.


 나와 여동생은 자식을 낳고 엄마가 더 미웠다. 자식은 보기 만 해도 아까워서 보물처럼 보다가도 그런 내 시선이 독이 돼

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존재였다. 너무 힘들어 순간순간 나쁜 마음을 먹 것조차도 죄스러워지는 내 분신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는 말로 모든 걸 대신했다. 잘못한 것도 말 한마디 풀 어지고 사소한 일로 쌓인 감정도 폭언으로 풀어내는 성격이 었다. 혼자 화났다가 갑자기 웃고 있는 엄마를 인격장애라고 의심한 적도 있지만 우리의 의심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동생이 육아로 지쳐가던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에 대한 서운함과 미운 감정이 북받쳐서 하소연을 하고 싶었

던 모양이다. 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라도 서운했겠다. 

 여동생은 며칠 전, 엄마에게 당한 설움을 토해내듯 말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여동생이 아파서 몸살이 난 날, 다른 일이 있다며 삼계탕을

사서 몸도 일으키지 못하는 여동생 등 뒤에 던져놓고 가버린

엄마. 그런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을 여동생의

마음이 느껴졌다. 화도 나고 마음이 아팠다. 왜 엄마는 늘 우

리가 뒷전일까? 삶에 치여 수없이 외면당한다고 느낄 자식

들의 심정이 엄마의 힘듦보다 하찮다고 여겨서 일까?


 하필 동생이 아플 때 보여준 엄마의 행동이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가 보고 싶다며 '자신이 원할 때만' 찾아오던 엄마였다. 그건 분명히 사소하지 않은 차이였다. 엄마는 당

신의 시간이 허락할 때 불쑥 찾아와서 눈도장 찍고 가버리기

바빴다. 그런 엄마의 행동을 느낀 건 여동생도 마찬가지라서

우리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서로에게 털어놓았었다.



 

 엄마는 찾아와서 피곤하다며 한 시간씩 누워있었고 잠시

어린 밝음 이를 얼르는가 싶다가도 핸드폰 게임을 했다. 육아

로 피폐해진 딸을 위해 단 한 시간이라도 아이를 봐주는 일을

기대해서는 안되었다. 나랑 여동생이 안쓰럽기는 했을까?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되는 자식을 보느라 밥을 제때 먹지 못하고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일,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몇 분 동행여라도 아이가 다칠까 봐 참고 참다가 겨우 배변을 하고 끝내 방광염에 걸리는 일, 새벽 내내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 지친 몸으로 아이를 보다가 지쳐 쓰러져 잠드는 일....  이 모든 일을 엄마도 겪었을 텐데. 엄마는 우리가 걱정되지 않았을까?


 자식이 원할 때 품을 내어주는 엄마와, 엄마 본인이 원할 때

자식을 안아주는 엄마. 이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도출한다.

 우리 엄마는 당연히 후자의 엄마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  다. 아빠가 뭔가를 요구해서 맞춰주느라, 공장일이 바빠서, 피곤해서, 다른 할 일이 있어서 등등. 엄마가 우리에게 등을 보이는 행동은 악의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외면 하는 태도로 보였다.




 엄마 우리를 외면하는 모습은, 엄마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우리가 엄마의 인생에서 최우선이 아니는 사실이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는데도, 상처가 되고 쓰라 렸다. 우리보다 새아빠가 먼저였고 일이 먼저였던 엄마의 뒷모습은 우리 자매를 쓸쓸하게 했던 게 결론이었다. 


 몇 년 전, TV에 모 국회의원이 나와서 자신의 삶과 자식에 대해 강연했다. 그때 그분은 바쁜 부모의 삶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힘들다며 자신의 아이도 바쁜 자신을 이해하 지 못하고 결핍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양분될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의 인생 자체가 고난인 건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



 

 여동생은 엄마의 선택으로 우리까지 괴롭게 만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반대하는 얘기를 했다. ' 재혼이 엄마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모든 원인과 잘못 엄마에게 돌린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겠냐' 고.


 잘못될 걸 알고 선택하는 인간은 없으니 엄마에게수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엄마에게는 자식 둘 딸린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던지, 혼자 두 자매를 키우며 살던 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만약 엄마가 지금의 새아빠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

했다고 해서 그 길이 행복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네 선택이니까 차후에 벌어진 일은 다 네 선택의 결과야. 그

러니 네 선택의 결과를 전부 책임져.라는 말은 한 치 앞도 볼 줄 모르는 인간에게 너무도 가혹한 거 아닐까? 그 가혹함이 부모에게 대입된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망했겠지. 그래서 나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이해했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했 다.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인간에

대한 관찰로 이어졌으며 남편을 만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

었다. 어쩌면 감사하게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를 끊임없이 결핍 상태로 밀어내고 벼랑 끝으로 몰아내던

엄마의 행동이 나를 망가뜨리지 않았다. 나는 약하면서도 강

해졌고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았

고, 그건 내게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타트가 인간의 목을 물고

말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네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내게는 그런 기회
조차도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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