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Oct 02. 2023

[책-에세이] 단단한 영어 공부

단단하지 않은 내 영어 공부에 힘을 싣는 격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처음 결심했던 것은 서른이 조금 넘어서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영어로 말하거나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내가 남편과 둘이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두 아이의 엄마 아빠였다. 결혼 후 5년간 날것의 육아를 하며 지쳐갔던 나와 남편이 친정 부모님과 동생의 도움으로 둘만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의 둘만의 해외여행이었으므로 준비 때부터 얼마나 설레던지 싱가포르에서도 5성급의 좋은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 레스토랑이나 수영장에서 직원들이 친절한 말투로 우리에게  가벼운 안부를 묻는 일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가벼운 안부도 안 들리는 것이었다. 사정은 남편도 비슷했는데, 우리는 운 좋게도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하고 또 직장생활을 할 때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대학 때 교양으로 배웠던 영어 이후에는 거의 영어를 접하지 않았고 우리의 보잘것없던 영어 실력은 흔적 없이 낮아졌던 것 같다. 돌아와 생각해 보면, 그냥 ‘차 더 줄까?’ ‘어떤 차를 줄까?’등의 아주 가볍고 편안한 문장이었는데, 영어를 못 알아듣겠다고 생각하자 영어 소리가 더 울렁거리게 느껴졌다. 용기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으나, 못 알아듣는 듯 해 급하게 라테로 변경하는 등, 싱가포르 여행에서 내 안에 새겨온 한 가지를 꼽는다면 돌아가면 꼭 영어 공부 해야지! 였다.  


그렇게 돌아와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에 가서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은 보여주지 말자는 생각에 일상 속에서 틈틈이 영어 강의를 듣고 문장을 외웠지만, 그래도 영어로 말하는 일은 어려웠다. 나중에는 나에겐 영어 인풋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미드를 보고 따라 하는 영어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되었다. 물론 열심히 따라한 문장이나 표현은 들리지만, 그렇지 않은 문장은 전혀 안 들리는 영어 초보자의 삶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아이를 키울 때 별다른 사교육 없이 책이나 많이 읽혀야지 했던 마음이었지만 아이가 자라날수록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영어로 된 그림책을 참 많이도 읽어줬는데 영어 그림책은 문장이 짧아도 모르는 표현도 많고 때때로는 비유적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아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영어이든 한글이든 언어에 큰 편견 없이 함께해 줬다. 그 과정에서 나의 영어도 조금 성장했던 것 같다. 모호한 문장도 그냥 읽어 가기. 그때 내가 애들과 함께 했던 유일한 영어 공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벼운 간식과 함께 영어 영상을 보게 했고 당시 아이를 위해 휴직했던 나도 함께 봤다. 그 시절 까이유, 티모시네 유치원, 맥스 앤 루비, 투피 앤 비누 같은 만화들은 어찌나 무해했는지. 영상 속의 인물들을 나도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큰아이가 까이유를 보던 시기에 막내가 나를 마미마미! 이렇게 부르던 목소리는 지금도 나를 웃음 짓게 만든다.) 또 그 만화 속의 엄마들은 어찌나 멋진지. 까이유 엄마의 육아 방식이 마음에 들어 까이유를 볼 때마다 엄마, 아빠의 모습에 감정이입하며 보니 아이들 만화도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게 되었다.


내가 애들한테 바라던 지점은 단순하다면 단순한데 영어의 외국인이 말하는 것을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외국인이 하는 말을 듣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미안 다시 말해줘, 빨라서 못 들었는데 천천히 말해줘 등의 말로 대화를 유연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사용자였다. 그래서 인종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세계를 확장하길 바라는 마음. 영어라는 언어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사교육시장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영어다. 나 역시 자주 현혹되어 원어민이 있다는 저 학원에 보내볼까? 원어민과 하는 화상 영어를 등록해 줄까? 원어민 소리만 나오면 마음이 흔들렸고 엄마의 부족한 발음으로 책을 읽어주었기에 부족한 영어 실력이 대물림될까 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 이제라도 제대로 된 원어민의 영어를 알려줘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런 원어민이 하는 영어는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허다했고, 원어민의 국적에 따라 레슨비도 달라지는 영어 사교육이라는 세계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세계였다.


그렇기에 영어를 공부하고 또 아이들에게 교육할 때는 단단한 심지가 중요한 거 같다. 김성우 선생님의 ‘단단한 영어공부’는 그래서 나에게, 잘하지 못해도 열심히 조금씩 도전하면 된다고, 원어민 아니어도 된다고, 발음 잘 안 돼도 된다고, 어차피 우리는 그들에게 외국인이고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본인도 공부하고 있다는 것도. 단어를 확장하여 기억하는 법 등의 노하우를 말해주는데 그 과정을 설명하는 그 구절을 읽는데 글자만으로도 신나서 설명하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될 정도이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며 하나씩 발견하는 세상의 기쁨을 나도 작게나마 느껴봤던 사람으로 그 작가의 신남에 공감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 전 내 앞의 영어 선생님과 독서 모임 도서였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책에서 몰입을 설명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 뇌에서 유영하듯 생각이 진행되다가 집중하여 파고 들어가지는 그 몰입이라는 단어가 영어로는 ’flow’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몰입(명사) flow ]로만 외웠을 터이다. 영어 단어가 더해져 우리의 독서 세상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내가 영어를 놓지 않고 계속 공부하려는 이유가. 우리말에 영어가 더해져 읽는 책들의 이해의 깊이를 넓히고, 더 많은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거대한 목표일까?



이제 우리 모두를 위한 영어 학습법이 아니라, 영어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영어 학습 이론에, 마케팅 슬로건에 속한 영어가 아니라 내 손안에, 혀끝에, 수집 목록에, 유튜브 채널에, 노트 필기에, 다양한 간판에, 자주 찾는 요리 웹사이트에 있는 구체적인 영어를 찾아보세요. 이를 통해 영어를 암기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영어로 나를 키워 가는 겁니다.

영어를 통해 내가 더욱 나다워진다는 것은 영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통해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말’을 ‘나의 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영어가 자라고 내가 성장합니다.

<@ 김성우 단단한 영어공부>



이제 누군가 나에게 영어를 왜 공부하냐고 묻는다면, 내 삶을 위해서 한다고 대답하고 싶다. 어차피 전공자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어로 조금씩 넓혀가는 세계가 흥미롭다고. 그래서 먼 훗날, 영어로 자유롭게 말하고 듣는, 그리고 그때에도 영어를 공부하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그렇게 단단한 영어공부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어 내 삶을 단단히 성장시키고 싶다.

<@표지사진 영국의 daunt books 서점. 영어로 꽂혀 있는 저 많은 책들을 내 세계로 끌어안는 날을 꿈꾸며>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우주를 누비며 다정을 전하는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