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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Nov 15. 2023

[에세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읽기로 하루하루 에너지를 비축했던 나와의 다정한 시간.

오랜만에 브런치 앱을 눌렀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싶어 한동안은 매일 쓰기도 했고, 틈날 때마다 브런치에 나의 글들을 저장하기 바쁜 시간도 있었다.

그런 나의 쓰기 에너지들은 왜 또 다 사라졌는가. 슬그머니 바쁜 일상을 핑계 대고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바쁜 가운데에도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미려던 나의 핑계가 머쓱해진다. 그러나 내가 좀 쉬었기로서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브런치에 저장해 놓은 나의 로그인 기록은 사라지고 아이디가 뭐냐고 묻는 브런치 첫 화면에 문득 서운했다. 그러나 브런치도 서운했겠지. 인사 한마디 없이 좀 쉰다는 말도 없이 한 글자도 쓰지 않던 나의 나날들이.


바쁘긴 바빴다. 곧 원서를 써야 할 시간이니, 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을 담당하는 나는 그야말로 업무 성수기인 때였다. 마지막 시험문제도 출제해야 했고, 정해진 날짜까지 수업 진도도 나가야 해서 한 마리의 진돗개가 되어 열심히 진도도 나갔다. 더불어 주장하는 글 쓰기 수행평가를 했기에 280명의 주장과 근거를 꼼꼼하게 읽고 평가하며, 아이들의 글에 설득이 되기도 반박하고 싶어지기도 했던 나날이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엄마는 쉴 수 없으니까, 엄마 역할도 해야 했기에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는데 요즘 왜 갑자기 빈대까지 난리인가. 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유입되었다던데, 긴 외국 여행을 마치고, 늘 과자 부스러기를 남기는 아들들과 함께 사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집안을 청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 그리고 한동안은 독한 감기와 싸웠다. 해마다 11월이면 꼭 감기를 크게 앓는 편인데, 올해도 여지없이 감기 놈의 공격을 온몸으로 치러냈다.


나의 그동안의 일상을 쓰고 나니 조금 구차한 핑계 같기도 해 부끄러워진다.(세상에 더 바쁜 사람들도 많지요. 암만요.) 거두절미하고 사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그냥 좀 쉬고 싶었다. 몇 번의 번아웃을 경험해 보니, 번아웃이 오기 전의 임계치를 대충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그때 쉬기를 선택한 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던 것 같다. 무튼 글쓰기를 쉬는 동안에도 양심상 읽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했는데 자랑할 만큼의 독서량은 물론 아니었다. 이것 역시 생존을 위한 독서였달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저녁 먹은 것까지 정리하고 나면 보통은 나의 시간인데, 이때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통은 쓸데없는 것들을 멍하니 보기도 했고, 만화책 보는 둘째 곁에 누워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꾸역꾸역 어플을 열어 영어 말하기도 숙제처럼 하고, 그러고 나서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에는 책을 꺼내 들었다. 딱 50페이지만 봐야지 하고 들었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한 권을 다 읽어내기도 하고, 50페이지가 얼마 남았나 뒤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읽기도 했다. 읽다가 졸기도 하고 빵 터져 웃기도 하고,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글쓰기 모임의 날짜가 되어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글을 한 편도 쓰지 못한 달의 글쓰기모임이었으나, 나의 무해한 이들은 그 어떤 상황도 늘 지지해 주기 마련이라 기쁜 마음으로 모임에 참석했고 역시나 많은 지지와 에너지를 채워왔다. 글쓰기 모임답게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도 최근 읽은 책들을 나누게 되었고 몇 권은 서로 돌려 읽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나의 책상에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선생님이 놓고 간 봉투에 어제 말한 책들과 다정한 메시지가 놓여 있었다.  봉투를 열어 평소 읽고 싶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제목부터 모순적인 책을 꺼내 읽다 보니 나에게 말해주는 듯한 소중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었다.


빅토리 노트’에서 이옥선 작가님은 노자의 사상을 인용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을 금지하고 대신 한 템포씩 느리게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저보다 한참 오래 산 선배가 조금 느긋해도 된다고 얘기해 주는 게 참 마음이 놓여요.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_황선우, 김혼비>


 이 책은 번아웃을 고백하는 김혼비 작가의 편지에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는 황선우 작가의 편지가 더해지고 있다. 일상의 잦은 실수를 연달아 경험하고 나서야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음을 알아차린 김혼비 작가의 고백은 한 때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혼자 샤워하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었다. 그런 곳에서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에 눈물을 흘려보냈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나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어둠의 색채가 떠올라 떠올리기 싫던 시간인데, 김혼비 작가에게는 황선우 작가의 편지로 그 번아웃의 시간이 밝아지는 기억이 될 것 같다. 역시 번아웃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법은 다정함인 것 같다.



잔디와 제사가 해야 할 일, 의무의 영역이라면 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잉여의 영역입니다. 다정함이란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마음을  쓰는 일이겠지요.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황선우, 김혼비>

 

그런 다정함은 물론, 타인의 다정함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다정함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에게 필요 이상의 마음을 쓰는 것. 남에게 하는 것보다 때로는 나에게 다정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조금 느긋하게 쉬기도 하고, 아무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은 일들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충만하게 채우기. 안 해보았던 일들로 나의 일상에 자극을 주고 나 스스로를 격려해 주기. 그러다 보면 내 주위의 다정함이 눈에 들어올 것이니 주변의 다정한 이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나에게 책만 주어도 되는데 다정한 메시지를 전했던 선생님의 마음이 다시금 따스하다. 의무의 영역을 넘어 잉여의 영역을 나눠준 다정함을 받아 힘을 내본다. 이렇게 일상의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는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채워 다시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연히 최선을 다하겠지만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 것’을 실현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그중 ‘함께 나눠서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꼭 물리적인 몫의 나눔이 아니더라도 함께 꾸준히 일상을, 웃음을, 마음을 나누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황선우, 김혼비>


근처의 독립 서점에 가서 혼자 놀다 왔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차도 마셨다. It’s okay to be slowly.라는 문장이 내맘을 저격했다.

(대문 사진은 글쓰기 모임 멤버들과 함께 나눈 티타임때 찍은 다정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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