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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01. 2024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진정한 만남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순간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기 바빴던 몇 달이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 새로운 공간은 나를 설레게도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까지에는 고군분투는 필연적이었다. 사실 바쁘던 시간을 보내면서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힘든 과정 중에도 일을 하며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느낌도 느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에서는 계속 나에게 가치와 의미를 찾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나를 자꾸 사용하기만 하고 채우지 못하는 듯한 기분은 종종 나의 발목을 잡았다. 용기를 내야 했다. 내가 채우고 싶은 순간들로 나의 일상을 만들려면. 그래서 낯선 공간에서 생활한 지 두어 달 만에 나는 독서 모임을 기획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메신저로 학교 구성원 전체를 클릭해 메시지를 보냈다. 보통 전체 공지가 있거나 연수할 내용이 있지 않으면 잘하지 않는 일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끝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일요일에 메시지를 보내요!
함께 책을 읽고 싶어 용기 내 독서 모임을 모집합니다!
일만 하느라 나의 에너지가 닳아만 가는 기분을 종종 느끼는데요. 그래서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나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보려 해요.

한 달에 한 권만 읽습니다
절대 어려운 책 안 읽어요
바빠서 못 읽고 와도 됩니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을 공유했을 뿐이다.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을 쓴 이보현 작가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좋은 사이가 되면 점점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이 풍성해진다”라고 말했다.
<@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엄지혜>

우리의 일상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화요일까지 회신 주세요!^^ 그럼 모두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라요


일요일 저녁 모두에게 예약 메시지를 보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월요일 출근을 했다. 규모가 작은 일터에서 무려 절반에 가까운 숫자의 구성원이 응답을 보내줬다. 읽지 못하고 와도 되냐는 물음, 너무 좋다는 대답, 함께 하고 싶다는 수줍은 응답까지 보는 내내 마음이 벅찼다.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함께 나누는 시간은 없었던 우리들이었다. 그렇게 모인 선생님들과 이번주에 첫 모임을 가졌다. 시원한 수박 주스를 나눠 마시며 함께 읽은 책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조해진 작가의 ’ 로기완을 만났다 ‘라는 책이었다.

소설은 어려운 사람에게 모금을 유도하는 방송을 만드는 김작가라는 방송작가가 방송 기획 중에 의도와 다른 결과를 가져와 삶의 의미에 회의를 느끼다, 탈북자 로기완의 기사를 우연히 읽고 로기완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벨기에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살아야만 했다는 로기완의 인터뷰 내용을 본 김작가는 삶의 의지와 목표를 잃고 있었기에 그의 일기를 읽으며 그의 행적을 쫓는다. 결국 그러던 중 자기가 회피하고자 했던 자신을 만나고 이를 용서하고 진심을 담아 용기 있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며  다시 살고자 한다. 로기완을 만나 어떠한 교류를 나누는 장면은 아주 짧았지만, 로기완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아이러니하게 회피하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진정한 만남이란 무엇일까. 사실 소설 속의 김작가는 애초에는 연민으로 시작했을 수 있을 것 같다. 로기완의 행적을 쫓으며 처음에는 로기완을 딱하게 생각하며 연민한다. 그러다 그 연민은 자기를 향하고 공감으로 나아간다. 결국 김작가는 만남의 과정에서 자기도 몰랐던 자기 자신의 진심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를 향한 진정한 연민과 공감은 결국 나에게 보내는 연민과 공감에 닿아 있고 그러한 만남은 나의 아픔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게 해주는 것 아닐까. 그러면 타인을 향한 말랑말랑한 연민과 공감은 결국 내가 참을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하게 만들고 나아가게 한다는 것 아닐까.

학교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하이볼도 마시러 가고 고기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대화는 참 소중한 일상이다


내가 나를 돌보고자 보냈던 독서 모임의 메시지는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함께 했던 구성원들은 나에게 항상 바쁜 일을 하며 힘들어 보였다는 공감과 연민을 더해주었다 타인의 공감을 받은 나는 조금 더 나아갈 힘을 얻었다. 용기를 내 먼저 손을 내민 만남은 방황하는 나에게 갈 길을 알려주었다. 진정한 만남은 시간이 길 필요도, 서로를 잘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충분했다.

이만하면 로기완을 찾으러 가며 자기 자신을 마주했던 주인공처럼 나 역시 독서모임을 통해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며칠이었다.


타인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 속으로 개입되는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브뤼셀에 와서 로의 자술서와 일기를 읽고 그가 머물거나 스쳐갔던 곳을 찾아다니는 동안 로기완은 이미 내 삶 속으로 왔다. 그러니 이제 나는 로에게도 나를 그 자신이 개입된 내 인생을 보여줘야 한다.

<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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