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심환 먹으며 덜덜 떨던 나의 첫 연수 강의
지난 겨울 방학 시교육청에서 하는 책 쓰기 연수에 다녀왔다. 학생동아리 활동으로 쓴 글을 자가출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연수였는데 연수 내용이 얼마나 알찬지 지금까지 들었던 연수 가운데 손에 꼽을만했다. 나 역시 친한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다녀온 거지만 다녀와선 나도 여기저기에 추천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 학교에서 새로운 업무로 바쁘던 나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맡은 업무가 생활지도와 관련된 업무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우선 살짝 놀라게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번호는 어제부터 계속 부재중 목록에 있던 번호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책 쓰기 연수 지원단 대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말인즉 다음 연수부터 강사로 활동해 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너무나 좋았던 연수고 연수 강사로 활동하시는 분들의 열정을 충분히 느끼고 온 터라 욕심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이제 막 학교를 옮겼고 새 학교에서 사람들이 모두 마다하는 업무를 맡고 있기에 도저히 짬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1. 능력이 되지 않는다. 2. 힘든 업무를 맡아 여력이 안된다. 3. 실은 지금 교문지도 중이라 통화 자체도 오래 할 수 없다며 정중하지만 야무지게도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책도 더 많이 보고, 글도 더 많이 쓸걸. 하고 싶은 일인데 능력이 부족으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던 하루였다.
저녁에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아이들과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다 연수 강사 제의가 왔지만 엄마가 못 할 것 같아서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별말 없이 밥 먹던 큰 아들이 갑자기
“그 연수 엄마가 되게 좋다고 했던 연수 아냐? 근데 왜 거절했어?”
“엄마가, 지금 일도 많고 바쁘고 또 너희도 케어해야 하고,,,,,”
“엄마는 우리가 뭐 할 때 시도하는 것과 시도도 안 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무조건 해봐야 한다더니 왜 엄마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라며 내가 했던 잔소리를 복붙 한다. 잠시 어질어질. 다시 전화해서 한다고 하라는 아들들의 성화에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용기를 내볼까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다시 전화하는 것은 부끄러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쨌는지 다음날 다른 선생님에게 전화가 또 왔다. 다시금 함께하자는 제안을 해주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조금 욕심내 덥석 잡아보기로 한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지만 뭐라도 되겠지. 하며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수지원팀.함께 모여 열심히 준비한 여름 연수의 날이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에게 강연 섭외 메일도 보내고 좋다는 대답에 뛸 듯이 기뻐하기도 하고, 연수 주제에 아이디어를 보태기도 했다. 또 여러 책과 자료들을 읽으며 연수를 준비하던 나날이었다. 그런 준비를 모아 시작한 첫 번째 강의. 내가 좋아하던 은유 작가의 기조 강연이었고 강연자인 은유 작가를 소개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최대한 들키지 않으면서 담백하게 소개해야지. 그러면서 언제나 쓰기와 읽기의 영감을 주는 작가님의 매력을 어떻게 어필할까. 몇 번이나 작가 소개 멘트를 고치고 연습하며 강연장 앞에 나갔다. 은유 작가의 강의를 기대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눈을 앞에서 마주하는 순간, 나는 내가 준비했던 말들을 해야 한다는 나의 이성의 지적에도 덜덜 떨며 횡설수설을 해버렸다. 두 시간 강연을 하는 작가님도 안 떠는 자리에서 강연자를 소개하는 사람이 떠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부끄러움은 오롯한 나의 몫이 되어 나를 주저앉히는 기분이었다.
첫날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덜덜 떨었던 나의 모습을 내내 자책하게 되었다. 나는 역시 역량이 부족했나. 왜 이렇게 떨었을까. 차를 타고 돌아오며 아침에 떨던 나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득 ‘나 잘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았던 연수였다. 교사로 수많은 연수를 들었지만 이렇게 좋았던 연수는 많지 않았다. 그런 연수 팀에 들어가게 되어 좋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음과 동시에 나 역시 잘하고 싶었다. 쟁쟁한 선생님들의 열정을 본받아 그렇게 나 역시 나아가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잘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나를 그렇게 떨게 만들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내 욕심을 마구 탓하고 싶지 않다. 내일은 내 강의가 있는 날인데… 잘하고 싶은 나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우선 준비를 더 철저히 해보자. 몇 번이나 피피티를 보며 대본을 만들어 고쳤다. 또 약물의 도움이 좀 필요할 수도 있으니 마시는 청심환도 가방에 넣어두었다. 아무래도 묵주를 챙겨가야겠다. 옷도 좀 더 편안한 옷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첫 강의니까. 수많은 강의를 하는 강연자들도 처음은 다들 떨었을 거니까. 떨리면 심호흡을 하며 준비한 것들을 차분히 꺼내보자.
둘째 날이 되어 그렇게 되뇌며 준비했던 강의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르겠다. 청심환을 한 병 다 마시면 약기운에 취할까 봐 반 병만 마셔서인지 강의 내내 떨렸던 것 같다. 중간에 ppt가 잠시 멈췄을 때 내 심장도 멎는 줄 알았지만 무사히 준비된 시간의 강의를 마쳤다. 중간중간 선생님들이 웃어주기도 하셨고 끄덕여도 주셨다. 강의를 마치고 식당에서 만난 선생님들이 웃으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해주기도 했다. 엄청난 강의는 아니었지만, 흔들리는 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넌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삼 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게 뭐라고 그렇게 떨고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내 떨면서도 나아가려 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아 부족함을 들키지 않으려 바둥대는 나지만 그런 나를 나라도 더욱 사랑해 줘야지. 내 욕심이 나를 망치게도 하지만 나를 나아가게도 한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씩은 나의 삶에 욕심을 내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나로 사는 삶을 나만큼 잘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결국 '살 만하다'라는 감각으로 귀결되는 일이라면 좋을 것이다.
<@매일을 쌓는 마음 - 윤혜은>
책을 읽다가 내 마음에 다정함을 더해주는 구절을 만났다. 이런 구절들이 모여 나를 다독인다. 그래서 나도 결국 ‘살 만하다’라는 감각으로 귀결되는 나날을 더하고 싶다.
(@표지사진은 이번 여름 방학 때 읽은 책들로 쌓은 탑. 내가 쌓은 책탑이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