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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Aug 18. 2023

'꽃'말입니다

생각보다 꽃을 보는 건 일입니다. 일은 품을 팔아야 합니다. 몸을 움직이고 시간과 돈을 써야 해요. 꽃을 보는 건 그래서 일입니다.

우리 만나는 날 손에 꽃 한 송이 없던 적이 있습니다. 제 손이 가뭄입니다. 

마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도 모래 몇 알이 전부. 제 속이 가난입니다.

애써 조금 걷자 합니다. 여름 땡볕이 머리 위를 달구고 땅을 데웁니다. 

더위에 날서있는 얼굴을 간간이 엿보며 말없이 걷습니다.

초록에 갇힌 세상. 온통 초록. 초록. 

겨우내 그리웠던 초록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날은 더 더워지고 배경은 한 결 같고. 짜증과 지루함이 뒤범벅인 당신. 

곧 장 집으로 돌아갈 기세입니다. 

그때 보이는 능소화. 아, 능소화입니다. 짧은 감탄만큼이나 애타게 찾던.뜨거운 초록들 사이 주홍색 한 송이. 가진 것 하나 없는 손으로 저기 하며 가리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당신도 나처럼. 작은 감탄. 내내 삐죽이던 그 입이 이제야 웃어보입니다. 안도의 한숨 쉬며 그 미소 살피니 입 끝에 피어난 능소화. 꽃을 보면 꽃이 피는구나. 꽃은 서로를 살게 하는구나. 내 손과 속이 마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제는 능소화가 저를 가르칩니다. 

꽃을 보는 건 일입니다. 당신에게 미소를 쥐여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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