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에 나는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 어디에라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딱히 전화해서 풀 사람도, 카톡으로 주구장창 떠들 사람도, 카페에서 만나 내 두서없는 신세한탄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해 지금의 나의 글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1. 책에 대한 고찰
사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서 숨을 쉬기 위함이었다. 당시에는 페이스북만 했는데. 그곳에 올리기 난해하고 올리고 싶지도 않았기에 블로그를 선택했던 것 같다(블로그를 사용하기 전에는 한글 파일에 써놓기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나는 자소서를 쓸 때 글을 어느 정도 쓸 줄 안다는 말을 곧잘 들었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글쓰기의 가장 기초지식인 두 가지만 명심하면서 써왔었다. 하나는 다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고, 하나는 문장을 길게 가져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써온 글들이 늘어나자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기 싫었지만 책을 곁에 두는 습관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후기를 남기다 지금은 잠정적으로 쉬고 있는 [덮은책]을 쓰게 되었다.
책에 대한 고찰은 끝없다. 같은 글이라도 내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말 없는 스승이라고 표현하나 보다. 끝없는 고찰은 나를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내가 아는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 깨닫게 하기도 하고, 이제 막 스물을 갓 넘은 나의 가치관과 수년을 고민해온 저자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어찌 됐든 독서의 결말은 성장이고, 이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 [덮은책]이다. 1월에 오랜 기간 써오지 않았던 [덮은책]을 다시 써보려고 한다.
기대는 의무.
2.자기 객관화
자기 객관화가 얼마나 힘든 일이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떠한 장치의 도움 없이 온전히 스스로를 객관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라 장치가 필요했고 내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하루는 정말 숨 쉴 틈 없이 나를 옥죄는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글쓰기를 알기 전에는 이러한 우울을 피하는 방법으로 술을 택했다. 술을 잔뜩 마시고 기절하면 적어도 우울함을 간직한 채 낑낑대는 새벽은 없으니까. 이게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정말 우연한 계기로 군대에 있었던 일기장을 읽어보았다. 정확히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을 앞둔 시점부터 내 일기장은 우울한 글들로 가득해져 갔다. 그리고 그것이 극심해졌을 때부터는 더 이상 적혀진 일기가 없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일기장으로나마 돌아보면 지금의 내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글이 주는 힘을 느꼈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아무 때나 적었다. 처음에는 이런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맛있는 음식에 술이나 먹자며 그르친 날도 많았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는 분명히 나타났고 지금은 힘든 순간이나 괴로운 감정이 들 때 글을 쓰게 된다. 글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감정 넋두리이지만, 술에 의지하며 제정신으로 아픈 구석을 달래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많이 성장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3.타인을 이해하는 한 발자국
글을 쓰다 보면 주제나 사건을 내 감정으로도 보다가 제3자의 시선으로 보다가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방식은 꽤나 좋은 방법이다. 누가 알려주진 않았지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라 많은 신용을 드리진 못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서 주제를 바라보면 일상생활에서도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또한 내 삶에 불쑥 나타난 다는 것은 잊고 산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직장 상사나, 팀플을 진행하는 팀원 등으로 나타나 나와 가까이 있게 되면 꽤나 골치 아픈 일을 겪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한 상황이 즐비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썼던 글을 돌아보거나 그런 일들에 대한 것을 주제로 글을 쓴다. 사실 이러한 과정을 거쳐도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기란 좀처럼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상대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상대와 나의 부정적인 감정 사이에 하나의 보호막을 둘 순 있는 것 같다. 이 보호막은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내 감정이 곧이곧대로 상하거나 훼손되지 않게 만든다. 여태껏 내가 써왔고 보았던 많은 글들이 나를 그런 환경에서 보호해 주었다. 이러니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기 위해 발악하며 썼던 시절에서 하나의 취미생활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글쓰기는 참 많이도 나를 구원해 주었다. 오늘 읽은 윤홍균 선생님이 쓰신 <사랑 수업>에서 잠들기 전 감사한 일을 써보는 것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글쓰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보려고 한다.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평생 함께할 동반자인 글쓰기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Gracias, amigo mío, por escrib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