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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Jan 09. 2023

사과

아주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이렇다 할 특별함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이런 날은 이벤트가 생기지요. 약속을 다녀와서 엄마랑 통화를 하던 중 그만 핸드폰을 손에서 놓쳐버렸습니다. 땅으로 강하게 꽂히는 순간이 슬로비디오처럼 보였지만 제 몸도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반응했습니다. 결국 액정이 완전히 나가버렸고, 겨우 터치만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수리점에 가서 물어보니 디스플레이가 박살이 나서 전체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하네요. 게다가 부품도 비싸서 수리비가 꽤 나올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당장의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무리에 가까웠지만 핸드폰이 없으면 안 되는 저는 결국 비싼 값을 치르고 수리를 선택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고장 난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선 늘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모종의 이유로 고장이 났다면, 그런데 그것이 나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면 사과나 반성을 통해 원래의 관계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부끄러움과 수치는 지불해야 할 합당한 대가이지요. 남의 탓을 하거나, 분위기나 흐름 따위를 이용해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쿨한 것도 멘탈이 강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부끄러움과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럴 의지조차 없는 겁쟁이에 불과합니다.



지구의 이산화탄소가 450ppm 되면 회복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때부터는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그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도 그때를 놓쳐 늦어버리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굳어버린 상대의 마음을 돌릴 순 없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사과를 할 줄 아는 것은 그만큼 값진 일입니다. 문뜩 저 또한 이를 지키지 못해 떠나보낸 관계를 생각하며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성찰하는 하루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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