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으로 가서 살자는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진원군은 화를 냈다.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하는 습관은 여전 하다면서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처음 시도는 싸움으로 끝나고 몇 달 후에 재도전했다.
그 때는 나도 지지 않았다.
'같이 안 갈거면 이혼 해야지 뭐. 자식도 없는 부부가 떨어져 살면 남하고 다를 게 뭐야?'
진심이었다. 이번에는 양가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도 나서서 나를 지원했다.
호찌민에서의 처음 몇 달은 등 떠밀려 온 그에게나 호기로운 나에게나 만만치 않았다.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싸우느라 바빴고 진원군은 초급 베트남어반에 등록을 하고 배우는 동안 이력서를 여기 저기 넣어 보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될 리가 없는 일이었는데 불합격 소식을 받으면 진원군은 낙담을 했다. 낙담은 나도 했다. 둘 다 현지 사정을 몰라 생긴 일이었다.
내가 퇴근해서 돌아 올 때마다 진원군은 침대에 누워 있기 일쑤였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 천성이 워낙 못된 탓에 그리고 나 역시 피곤에 절어 돌아 온 탓에 그를 위로할 열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모두 각자의 어깨에 무거운 돌 하나 쯤 짊어지고 사는 것 아닌가. 부부라고 해서 달라질 게 뭐란 말이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자.
나는 그런 말을 나에게도 그에게도 서슴없이 나불거렸다.
그러나 그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나는 웬수같은 직장 동료 라도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TV도 못 본다는 것, 그렇다고 나에게 하소연할 수 도 없다는 것, 그래서 궁지에 몰렸다는 것, 그래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도 상관 없다는 것, 그래서 점점 말을 할 일이 없어진다는 점, 그래서 그가 우울해 지고 있으며 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양이 생각이 났다.
사는 내내 털 달린 짐승을 집 안에 둬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야 시골 집 마당에 가축을 두어 길렀지만 가축은 언감생심 방문턱을 넘어 들어 올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짐승을 집안에서 키운다면 그건 고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권하기도 했다.
진원군을 보살펴 주기 보다는 그가 보살필 그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지 않겠나 싶었다.
이번에도 나는 진원군과 그다지 상의 하지 않았다. 고양이나 키워 볼까, 라고 운만 띄워 놓고는 바로 수소문을 시작했다. 어느 집 고양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나았단 얘기를 듣고 다음 날로 찾아 갔다.
고양이를 주겠다고 한 베트남 여자는 마당이 넓은 집에 살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는 배부분만 빼고 몸 전체가 까만 얌전하고 우아한 놈이었다. 새끼들이 한결 같이 까맸다. 다들 한 바구니 안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녀석만 노란 바탕에 갈색 줄무늬가 있었다. 주인 여자 하는 말이 아빠 고양이에게 같은 무늬가 있다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 놈을 데려 가겠다고 했다. 어떻게 들어 올릴지를 몰라서 우물쭈물 하고 있자 주인 여자가 와서 목덜미를 잡는 법을 보여 주었다. 들고 간 수건에다 새끼 고양이를 싸서 돌아오는 길에 긴장한 녀석을 쓰다듬어 주면서 벌써 애틋한 마음이 생긴 것을 알았다. 행복할 거야. 걱정하지 마.
진원군은 고양이가 싫지 않은 듯 했다.
‘먹이와 화장실이 필요해. 일단은 신발박스를 써야겠다.’
그 날 저녁에 그는 소파에서 새끼 고양이를 안고 잤다. 엄마와 형제 떨어져 첫날 밤인데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면서.
고양이 이름은 나비로 하기로 했다. 진원 군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 나비라고 했다. 그 즈음의 고양이는 죄다 나비로 불렸다. 그 나비가 쥐 머리만 떼어다가 자기 운동화에 넣었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다음 날 부터 진원군은 나비를 병원에 데려가고, 먹이를 사고 장난감을 사느라 바빠졌다. 새끼 고양이와 장난 치느라고 몸에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발톱을 잘라주고 목욕을 시키는 일이 우리 둘에게 큰 행사가 되었다.
한 번은 나비가 3층 발코니에서 미끄러져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입원 치료, 방문 치료 모두 진원군이 정성을 쏟았다. 내가 한 일이라곤 어떻게 해! 라면서 운 것 뿐이었다.
어느 날은 나비가 갑자기 먹지를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입을 꼭 다문채로 먹지도 놀지도 않았다. 이러다 죽는 건가 싶어 겁에 질려 있는데 툭하니 뭔가를 뱉었다. 이빨이었다. 그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열심히 먹고 놀았다. 검색해 보니 이 갈이 하는 고양이들이 간혹 잇몸이 아파 안먹기도 한다고 했다. 진원군과 나는 눈물 고인 채로 허허 웃었다.
그 나비가 지금은 만 세살이 되었다. 까망이라는 이름의 동생도 생겼다. 까망이는 나비가 한 살 되던 해에 데려왔다. 까망이가 하도 기운이 세니 나비가 줄곧 먹이를 빼앗긴다. 진원군이 버럭하고 까망이를 나무란다.
‘까망이 너는 왜 이렇게 위 아래가 없어? 혼날래? 나비 다 먹으면 먹어! 어떻게 하루 종일 먹기만 하냐.‘
잔소리는 멈출 새가 없다.
그런데도 진원군은 고양이들에게 인기쟁이가 되었다. 이 애들은 나 오고 가는 건 거들떠도 안본다. 대신 진원군이 기척만 보여도 그 앞에 모여 앉는다. 진원군 발그림자를 따라 다니는 게 그 애들 하루 일이다.
근심 걱정 하나도 없는 고양이들의 세계란 어떤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출근 준비로 바쁜 나와 달리 방바닥에 찰떡처럼 늘어 붙은 고양이들을 보면서 생각하곤 한다.
여기 우리네 인간은 너네들 같지는 않아.
근심과 걱정은 인간의 길동무 같은 거야.
그렇지만 네들 때문에 한 시름 놓았다.
행복할 거야. 걱정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