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끄물끄물하고 몸은 근질근질하다. 걷기 딱 좋은 날씨다. 가방에 물을 넉넉히 챙긴다. 화장실도 다녀왔다. 10킬로를 걷기로 마음먹은 날. 심호흡을 하고 Garmin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지난 일요일의 일이다. 하늘이 어둑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후드득 쏟아져 중간에 몇 번을 멈추어 서야 했지만 10킬로 걷기는 잘 마무리되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정오에 끝났으니 총 두 시간이 걸렸다. 걷기 좋은 서울에서야 10킬로 걷기가 별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오토바이 천국 호찌민시에서 '나 혼자' 10킬로 걷기는 별 일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10킬로를 혼자 걷기로 마음먹기까지 몇 개의 장애물이 있었다. 일단 그 시간에 그런 차림으로 걸어 다닐 여자는 한 명도 없을 거라는 점. 걷다 보면 쓰레기가 심심치 않게 발에 차인다는 점. 길을 건널 때마다 좀비 떼처럼 달려드는 오토바이를 잘 피해야 한다는 점(이젠 잘한다.). 혹시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서울과 달리 공중화장실 따위는 없다.) 등.
그중에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쥐였다. 산 쥐, 죽은 쥐, 거리에 있는 모든 형태의 쥐. 포비아라고 표현하는 건 좀 과하지만 여하간 나는 쥐가 싫다. 쥐의 꼬리가 사악 보이기라도 하면 온 몸에 오소소 닭살이 올라온다. 아마 어릴 때 기억 때문일 텐데 소름이 돋도록 싫지만 다시 소환해야겠다. 초등학교 때던가 우리 집 화장실이 푸세식이었다. 별나게도 그 화장실에 쥐가 살았다. 볼일을 보고 있으면 그 아래서 쥐들이 찍찍거렸다. 젠장. 지금 생각해도 거지 같은 기억이다. 그런 이유로 여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집에서 햄스터를 키운다는 애들이다. 그런데! 호찌민의 거리에는 어딜 가나 웬만하면 쥐가 있다. 길에 쓰레기도 적당히 있으니 쥐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잘들 먹어서 덩치들도 좋다. 쥐의 꼬리가 바람을 가르며 내 발목 앞을 가로지를 때도 있고, 사지를 뻗고 죽어 있을 때도 있다. 잘못하면 콱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남편을 대동하지 않고서는 거리에 나서기가 어려웠다. 남편이라고 쥐의 출몰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악, 소리를 지른 후 욕을 해 댈 때 누군가 들어주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달까.
그런데 나는 바퀴벌레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호찌민시에는 당연히 바퀴벌레도 많다. 가히 그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많다. 나는 바퀴벌레를 무엇으로든 잡을 수 있다. 물론 맨손으로 잡지는 않는다. 주변에 보이는 도구를 이용해 어지간하면 다 때려잡는 편이다. 그리고 사체에서 흘러나온 내장의 파편을 휴지로 싹싹 닦아 뒤처리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꺅꺅거리면서 소동을 피우는 사람들을 이해 못한다.
남편은 쥐는 무서워하지 않지만 바퀴벌레는 못 잡는다.
'당신은 쥐가 괜찮아?'
'응. 괜찮아. 안 무서워.'
'바퀴벌레는?'
'그건 싫지.'
'그래? 각자 다른 걸 보니 생각의 차인가? 나도 쥐를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당연하다. 누군가는 쥐의 출몰에 꺅꺅 거리는 나를 호들갑 떤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싫어하는 걸 굳이 좋아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참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예전에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전쟁 나면 큰일이야. 물자가 없으니 커피 따윈 마시지도 못하겠지. 커피 없으면 못 살 텐데...'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커피 없어도 산다. 건너 건너 아는 미국인이 감옥에서 일 년 산 적이 있었는데 아주 골초였다. 담배 없이 감옥 살이 할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는데 담배 없어도 멀쩡하게 일 년 잘 살고 출소했다. 닥치면 다 견딘다. 못할 건 없다. 상황에 대처하는 마음의 문제다. 내가 쥐를 견뎌야 하는 이유는 걷고 싶다, 는 강렬한 욕구였다.
쥐가 너무너무 싫은 당신이 쥐가 서식하는 호찌민 거리에서 반드시 걷거나 달리고 싶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쥐를 견뎌내거나 바깥에서 걷기를 포기하고 지루한 짐으로 돌아가거나. 나는 쥐를 견뎌내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실제로 일요일 아침 가방을 꾸리면서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래, 쥐 그깟 거 나오라고 해. 어쩔 거야. 응? 어차피 쥐 너도 도망가기 바쁘잖아.'
그렇게 하고 나선 길이었다. 그러니 10킬로 걷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감회가 남달랐을 수밖에.
여전히 쥐는 싫다. 뾰족한 귀도. 반짝이는 까만 눈도. 징그럽게 통통하고 매끄러운 꼬리도. 쥐를 만나면 여지없이 소리를 꺅하고 지를 테다. 하지만 그 일요일 아침 길을 나서면서 마음먹은 게 여전히 유효한지 내일도 가뿐하게 길을 나설 수 있는 기분이다. 어떡할 거야. 같은 행성에 살도록 만들어졌는데. 견뎌야지.
'웃긴 건 뭔 줄 알아, 진원 씨? 그 날 따라 쥐가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야. 참 다행이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