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옥이 오지 않은 아침

by 까망나비

아침 6시에 눈을 떠 침대에서 꾸물럭 거리다 보니 금세 6:30 이 되었다. 진원 군은 벌써 옷을 갈아입고 출동준비를 마쳤다. 나도 잽싸게 옷을 갈아 입고 따라나선다. 동네를 걷는 것은 주로 늦은 오전 혹은 주말 오후였지 이렇게 아침 일찍 걷겠다고 집을 나서본 적이 없었다. 아직 해가 동쪽 어딘가에 있어서 그런지 날씨가 선선하고 걷기 딱 좋다.


집을 나서서 근처의 중학교 앞을 지나는데, 등교하는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베트남의 공립학교들은 아침 7시 전에 모든 아이들이 등교를 완료해야 한다. 거기에 학교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아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내가 사는 곳 바로 옆에서 공부한단 것을 알게 되니 새삼스럽다. 북새통은 학부모들이 오토바이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생긴다. 교문 앞에 까맣게 오토바이들이 몰려 서 있다.


학교 정문을 벗어나 조금 더 걷다 보면 강이 나온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오기 때문에 물이 황톳빛이다. 메콩 강의 한 줄기일 것이다. 한강보다 폭이 좁은데 컨테이너를 실은 바지선이 떠다닌다. 이른 아침인데도 낚시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인다. 나와 진원 군은 그들을 항상 신기하게 바라보곤 한다.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물에서 고기 잡아다가 자기들이 먹는 건가?”

“그러게. 어디 팔지는 않겠지?”

먼발치에서 봐도 물은 더럽다. 흙탕물인 건 그렇다 치고 강 둔덕은 왜 항상 쓰레기로 덮여 있는가. 언젠가 왜 저렇게 열심히들 낚시를 하느냐고 베트남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강의 물고기는 공짜로 얻는 음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공짜 좋아하는다는 얘기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네들 광고에는 뭔가를 공짜로 준다던가, 할인을 50%에서 100% 한다는 문구가 종종 있다. 저들도 앞으로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겠지.


강변을 따라 더 걷다 보면 다리가 나온다. 항상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 걸을 때 기분이 상쾌하다. 강물 더럽다고 바람까지 더러우랴 싶어 맘껏 즐긴다. 앞에 가던 진원 군이 흐익, 소리를 내며 휘청한다. 얼핏 보니 몇 걸음 앞에 고양이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나 역시 아악, 소리를 지르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지나치질 못하고 쩔쩔맨다. 도로를 건너다 치인 고양이를 누가 여기다 던져 놓은 모양이다. 호찌민에서 길을 걷다 쥐를 보거나 쥐의 사체를 보는 일은 흔하다. 쥐의 사체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쥐포처럼 말라가다 어느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다. 고양이는 처음이라 마음이 안 좋다. 고개를 돌린 채로 잰걸음으로 그 옆을 지난다. 올 때는 다른 길로 돌아와야겠다. 뭣 때문에 다리를 건너려고 했니, 가엾은 것.


비명횡사한 고양이가 마음에 걸리지만 우리는 계속 걷는다. 호찌민에서 러너 되기는 힘든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른 아침에 나와보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외로운 러너들이 왕왕 보인다. 숨을 헉헉거리며 달려 지나가는 이들에게 힘내라고 어깨라도 토닥거려주고 싶다. 비록 나는 못 달려도 당신이 열심히 달리는 것을 보니까 힘이 나네요,라고 말을 건네고 싶다. 혼자서 걷거나 달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인 러너들도 꽤 있다. 나도 혼자라도 달려볼까? 슬며시 러너 부심이 고개를 든다. 그러고 보니 빨리 걷기를 하는 지금 다리가 신이 나 있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력을 다해서 달리다 보면 그대로 날아 오를 수 있을 것도 같다. 천천히 달려본다. ‘갑자기 왜 달려?’ 진원 군이 외친다. ‘달리고 싶어서!’




진원 군과 나는 겨우 한 시간, 6 km를 걸었을 뿐인데 대단한 모험을 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한시간이라니. 집 근처에 당도했는데 아직도 시간이 8시가 안됐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베트남 사람들 틈에 끼어 우리도 분짜와 분넴능을 주문해놓고 죽은 고양이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음식이 나왔다. 야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다. 첫 숟갈이 꿀맛이다. 그래 운동 후에 먹는 이 음식. 다 내배로 가서는 살이 되리. 어차피 지난번의 위경련 때문에 많이 먹지도 못한다. 맛있게 반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진원 군과 나는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다시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 커피를 주문한다. 오, 카페 직원이 막 구운 크루아상을 쟁반 가득 담아 진열을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저걸 안 먹는 건 죄악이다. 크루아상을 접시에 받아 놓고 들여다본다. 참 먹음직스럽도다. 진원 군과 나는 조개에서 진주라도 캐듯 조심조심 크루아상 결을 벗겨내어 쭉 찢는다. 그리고 입에 쏙. 녹는다. 녹아. 그리고 카푸치노 한 모금.



이러니 세상은 아름답다. 아직 지옥은 시작되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를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만은 행복해야지. 다행인 건 내일 또다시 아침이 온다는 사실.


진원 군은 화목 토만 걷겠다고 했는데 내일 아침엔 나 혼자라도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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