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가정주부요, 나는 가장이니

by 까망나비

내 남편 진원 군은 가정주부이다. 호찌민으로 이사 온 이후로 줄곧 가정주부였다. 완전히 가정주부로 자리를 잡기까지 둘이서 티격태격했던 일년을 포함하면 자그마치 4년차이다. 조정기간 일년동안 나는 협박과 회유를 시전 했고 진원 군은 자기 성격대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이혼 카드를 꺼내 들었고 진원 군은 못 이기는 척 따라와 주었다.


내 요구는 간단했다. 내가 먹여 살릴 테니 살림을 도맡아 달라는 것뿐이었다. 남녀의 고전적인 성역할 따위는 집어치우고 처한 상황에 맞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떠나 남의 나라 와서 사는 이유가 뭐냐. 남의 눈치 벗어나서 우리에게 맞는 생활을 만들자. 내가 직장이 있으니 생계를 책임지고 직장이 없는 당신은 집을 직장 삼아 요리, 빨래, 청소 등을 맡아주면 어떻겠냐.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합의에 도달했지만 진원 군이 '살림을 도맡는다'는 게 뭔지 깨닫기까지의 시간도 한참이 걸렸다.


그건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시어머니 탓이 지극히 크다. 진원 군은 아들 다섯 있는 집의 막내인데 시어머니는 집안 건사보다는 바깥에서 돈 벌 궁리에 더 바쁜 양반이었다. 결혼 막 해서 신혼일 때 시어머니 댁에 가면 집안이 가관도 아니었다. 밥알이 말라붙은 밥공기나 뒤집어진 고무장갑 등이 침대 머리맡에 있기 일쑤였고 주방 싱크대는 더러운 그릇들이 산을 이루고 있어서 손을 대기만 해도 무너질 기세였다. 구석마다 말도 안 되는 잡동사니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발 디딜 곳을 보면서 집안에 들어서야 했다. 나를 비롯한 며느리들은 그런 집안 꼴은 처음인지라 처음에는 좀 놀랐다가 나중에는 보고도 못 본척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팔을 걷어붙인 이가 있었으니 나의 첫째 큰 형님이었다. 그녀는 시댁에 들어서면서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출입구부터 시작해서 화장실 구석까지 번쩍거리게 닦아 놓고는 했다. 아랫동서들은 좌불 안석이었지만 하지 마, 앉아있어, 내가 할게 라면서 번개처럼 움직이는 그녀를 그냥 넋을 놓고 구경하는 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다였다. 그게 싫은 사람은 오직 한 명, 시어머니였는데 그래서 큰 형님 신혼 때에는 고부갈등이 심각했었다고 한다.


이런 집구석에서 태어나 자란 진원 군은 청소와 정돈의 개념 정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전업주부로 나선 이후에도 그는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물건들을 납득할 수 없는 자리에 천연덕스럽게 두었다. 틀림없이 청소를 했다는데 청소하기 전보다 더 어지러운 상태가 되어 내가 퇴근하고 와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청소기를 돌려야 하는 날이 많았다. 빨래통에 들어간 나의 옷가지들이 종종 되돌아오지 않았다. 주방도 하루치 설거지가 쌓일 때까지 두고 심지어는 날을 넘기니 촘촘히 생겨난 곰팡이들이 싱크대에 뿌리를 내렸다. 처음에는 욕을 흠씬 해가면서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이러다가는 화를 못 참고 이혼에 이르게 될 것 같아서 어느 날 그에게 몇 페이지가 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말이 편지이지 카카오로 논문 길이의 메시지를 보낸 것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살림을 도맡는다는 행위의 구체화된 규칙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설거지는 식사가 끝난 후 10분 이내에 시작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그릇들은 건조대에 그냥 두지 않고 그릇장에 정리한다. 설거지가 끝날 때마다 싱크대와 수채 구멍도 세제로 닦는다. 곰팡이가 있는지 언제나 점검한다....' 77 사이즈였던 내 원피스가 44 사이즈가 되어 돌아왔을 때를 떠올려가며 빨래에 대해서도 촘촘히 적었다. 한글 배우는 아이에게 ㄱ ㄴ ㄷ 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격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게는 이런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깨끗함과 정리정돈이라는 가치에 대한 진원 군과 나의 기준은 산과 바다만큼 멀었기 때문이다. 편지의 끝에는 단서를 달았다. '이 모든 게 지켜지지 않을 시 이혼을 원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전에도 얘기했듯 나 역시 청소벽이나 정리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내 눈에도 진원 군의 전업주부 되기는 멀고 먼 여정으로 보였다. 다행히 장문의 메시지 이후로 그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주부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실토한다. 아무튼 그는 주부가 되었다.

안다. 호찌민의 주부들은 청소나 요리 등의 집안일을 위해 베트남 아줌마를 많이들 고용한다. 저렴한 인건비 덕에 가능한 일이다. 일주일에 일이만 원 쓰면 될 일을 가지고 내가 굳이 남편 부려먹는다는 오명을 뒤집어써가며(게다가 아줌마들이 훨씬 잘한다!) 그를 전업주부로 들어앉힌 이유는 단 하나다. 아무 할 일이 없는 나날이 그에게 가져올 폐해가 두려워서였다. 뚜렷한 일 없이 놀면서 지내는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혹시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게 될까 봐 두렵다. 진원 군 역시 베짱이 체질이 아니다. 큰 스트레스는 못 견디는 초식 인간인 반면에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기쁨을 즐기는 사람이다. 초식 인간은 것은 존중하지만 식물인간이 되는 것만은 막아서고 싶었다.


그는 지금 호찌민 시내의 거의 모든 마트의 회원카드를 가지고 있다. 어느 마트의 적립금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마지막 단위 숫자까지 외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빈 마트는 이게 더 싸고 빅씨 마트는 이게 품질이 좋다는 류의 정보는 쫘악 꿰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망고가 어느 마트에서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그에게 물어보면 된다. 드라이클리닝을 잘하는 집, 수선을 잘하는 집, 고양이 간식을 종류별로 구비한 집 등의 편의 시설들에 대해서도 물어보라. 이제 그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차린다(예전에는 나보다 늦게 일어났다). 여전히 양말 짝은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지만 옷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졌다. 청소기는 매일 돌리고 물걸레질은 이틀에 한 번 한다. 하루 종일 바쁘게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누비면서 장을 보고 세탁물을 찾고 혼자서 맛집도 잘 다닌다(그런 것 같다). 주말에는 가끔 내가 요리를 하기도 하는데 주방은 그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생겨났다. 주방에서는 그의 지시를 따른다. 사실 뭐가 어디 들었는지 내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맨날 있던 가위가 어느 날은 냉장고에 들어있고 뭐 그런 식이다.


나는 이 남자랑 20년째 살고 있고 앞으로도 한참을 더 살게 될 테다. 한숨이 나오지는 않는다. 어떻든 그 오랜 시간을 입술을 쪽쪽거리면서만 살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더구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먹여 살릴 관상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남자랑 의리로 산다. 사랑으로 만나 의리로 살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충실히 즈려밟으며 사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딱 준비되어 있다. 어느 날, 진원 군이 행여라도, '나 여자가 생겼어. 시장 보면서 오다가다 만났어. 나이 어리고 착하고 예쁘기까지 한데 내가 좋대'라고 하는 순간, '어서 가. 어서 가서 오래오래 잘 살아',라고 말할 준비. 심지어 나는 그 둘앞에 꽃길을 깔아 줄 수도 있다. 재산 반? 그런 게 있다면 주고 말고.


그나저나 진원 군은 브런치의 존재를 모른다. 내가 여기다 이런 걸 쓰고 있다는 걸 알면 바로 싸우게 될테지. 무엇보다 내 썰은 오로지 내 입장만 대변한 것이니까 진원 군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 입에서 화염을 쏟아내면서 할 얘기들이 나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글은 그에게는 영원히 비밀이다. 게다가 내 글을 읽은 후 진짜 젊은 년이라도 데리고 나타나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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