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릴리

너의 힘겨운 청춘을 응원한다.

by 까망나비

그녀의 이름을 릴리라고 부르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일랜드인 매니저가 릴리를 해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었으니 작지 않은 사건이었다(그의 이름을 브라운이라고 부르자). 나는 브라운과 릴리를 비슷한 시기에 알았고 우리 셋은 서로를 알 만큼 아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당시에 릴리는 위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받느라 병가를 2주나 냈다가 돌아온 상황이었다. 사실 그놈의 수술 때문에 그녀가 입원했다는 병원을 문 앞까지 찾아갔다가 못 만나고 온 적이 있긴 했다(가장 먼저 눈치를 챈 사람이 남자인 브라운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라운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당장 릴리를 해고하라고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왜냐고 물으니 너 그 애 가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주나 병가를 내고 받은 수술이 가슴성형이었다고!! 그때서야 용종을 제거했다는 그녀가 퇴원 후 가슴에 붕대를 감고 다니던 게 생각이 났다.


웬일인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코미디가 있을 수 있나. 나는 엉뚱하게 릴리도 이해가 되고 브라운도 이해가 되었다. 평소의 그녀를 떠올려 보면 가슴성형이 그녀에게 얼마나 절박한 일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한 편 전체 직원을 바보 취급한 릴리랑 일 하는 건 너무도 모욕적이라고 말하는 브라운도 그 심정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며칠을 기다려 스스로의 평정심이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한 후 릴리를 만났다.

이제 붕대 풀고 다녀. 나한테 미리 얘기했어도 말리지는 않았을 텐데 왜 거짓말을 했어?

우물쭈물하다가 그녀가 말했다.

베트남에서 가슴수술을 하는 건 실제 창녀 거나 창녀 취급을 받는 여자들이야. 그런 시선을 받는 게 싫어서 그랬어. 정말 미안해.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데 수술은 왜 한 거야?

나는 항상 작은 가슴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어. 엉덩이는 운동하면 커지는데 가슴은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하고 나니까 세상이 달라졌니?

100%. 남자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

그랬구나.... 그렇담 나도 해야겠는걸,

압박붕대를 푼 그녀가 아름다웠다면 진짜로 나도 가서 수술을 했어야 했는지 모른다. 150 cm도 안 되는 릴리의 체구에 축구공 크기만 하게 붙은 젖가슴은 마치 따로 숨 쉬는 두 개의 생명체처럼 이질적으로 보였다. 릴리의 만족과는 별개로 미적 감각이라고는 없는 성형외과 의사에게 나는 흠씬 욕을 해 주었다. 물론 속으로.

릴리는 브라운을 따로 만나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브라운은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고 릴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한 동안은 사건사고 없이 잘 지냈지만...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이었다. 그녀는 느릿느릿한 다른 베트남 직원들 사이에서 재빨라서 돋보였다. 면접 때에도 급여는 이만큼 되어야 한다고 따박따박 얘기를 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네 일, 내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내가 겪었던 베트남 직원들은 꼭 이게 누가 해야 하는 일인지를 따지는 경향이 있었다. 릴리의 경우는 웬만한 일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고 몰라서 못하는 일은 가르쳐 주면 되었다. 무엇보다 배우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 만으로 스물두 살이었다. 어린애가 야무지네. 난 저 나이에 저렇게 못했는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녀는 금세 매니저들의 눈길을 샀다. 어쩌다 생긴 미숙한 실수들은 어려서 그렇겠거니 다음엔 잘하겠거니 하면서 넘어갔다.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남들보다 너무 돋보이면 동료들로부터 미움받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았다. 그녀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흉을 보았다. 항상 사근사근해 보였기 때문에 그녀가 또래 그룹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점이 의아했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나는 재판관 자격으로 나서야 했는데 대부분은 놀라울 만큼 하잘 것 없는 일들이었다. 릴리의 눈물 바람 때문에 종종 드라마가 펼쳐졌다는 점은 매우 곤란한 부분이었다. 그녀가 우는 동안 상대방(들)은 뭐 저런 걸로 울고 지랄이야, 하는 표정으로 꼿꼿하게 앉아 있곤 했다. 이런 경우 우는 사람 쪽으로 추가 기울기 마련이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누가 문제인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업무도 업무였지만, 릴리의 사생활은 동료들에게 뒷담화의 풍성한 소스를 제공했다. 그녀의 ‘엑스 보이프렌드’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거의 항상 현재의 보이프렌드가 있었지만, 곧잘 전남친을 화제에 올리곤 했다. 그게 어느 날에는 프랑스 인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스위스 인이었다가 해서 언젠가 내가 작심을 하고 물었다. 첫 남친부터 현 남친까지 차근차근 세어보자. 그녀는 자그마치 일곱 명을 읊었고 모두 다 ‘서양인’이었다. 국적은 프랑스, 스위스, 호주, 캐나다 등으로 다양했다. 대학 입학 이후부터 만났다고 한 것과 그녀가 수물 두 살인 것을 감안할 때 일곱 명의 남친을 차례대로 만나려면 일 년에 몇 명씩 갈아 치워야 하는 것인가. 그것까지 계산하기는 귀찮았고 그저 그중에는 몇 번 자고 헤어진 남자들도 섞여 있겠지 생각했다. 과연 그 서양애들도 그녀를 여자 친구로 생각했을까 호기심이 동했지만 차마 물어볼 순 없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면서 남친 자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남친은 개인 헬기가 있었고, 프랑스 남친이랑은 어디를 여행했고. 이랬다면 동료들이 그녀를 아껴 주지 않은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이래도 진실 이래도 둘 다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술자리에서였던가, 다른 직원이 릴리에게, 어디에 가면 그렇게 외국인 남친을 안 끊기고 만날 수 있어?라고 물었다. 반은 놀리는 투였지만 릴리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비결을 공개했다. 일단 차려입고(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반은 벗은 상태를 말한다.) 금요일 밤에 외국인 많은 바를 가는데(리스트가 있었다), 친구를 딱 한 명 데리고 가야 하고 그 친구도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한다. 테이블에 앉으면 절대 베트남어를 사용해서는 안되고 영어로만 대화를 하고 있으면 된다는 거였다. 그러면 외국인 남자애들이 한 둘 씩 말을 걸어온단다. 그런 걸 직장 동료 앞에서 술술 털어놓는 그녀는 헛똑똑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창업을 하겠다고 나서자, 릴리는 자신을 데리고 나가 달라고, 나랑 일하겠다고 했다. 사생활이야 어찌 되었든 업무적 능력이 있다는 건 팩트였으니 나는 그녀가 따라와 주겠다고 해서 반가웠다. 어차피 손 빠른 베트남 직원이 있어야 창업도 가능했다. 문제는 제 동료들이랑 있었지 나와는 합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가 없었다면 나의 창업 기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도전으로만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나의 팔과 다리가 되어 창업에 필요한 수만 가지 서류 작업을 도왔고(이 나라는 전산이라는 게 없다), 이후 우리 회사는 나름대로(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양을 갖추어 굴러가고 있다.


그 사이 그녀는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그녀와 밀접하게 일한 이후 나도 그녀가 드라마 퀸이라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지난해와 올해 그녀가 우는 걸 본 횟수가 열 손가락을 훌쩍 넘기지 싶다. 그녀는 때로는 사생활이 잘 풀리지 않아 울었고(그 사이 남친이 세 번 바뀌었다), 때로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울었고, 때로는 내게 인정받지 못해 울었다.


그녀는 호찌민에서도 다섯 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태생이다. 공부를 잘했고 대학은 스위스에서 다녔다. 딸은 나름 선진적인 교육을 시켰지만 부모님은 지독히도 옛날 사람들이다. 그녀의 엄마는 호찌민 같은 위험한 데서 살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여태 난리란다. 어쩌다 고향을 방문하는 날이면 그녀는 부잣집 마나님처럼 차려입는다. 고향 사람들에게는 대도시에 가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그런 차림이 먹힌다면 시골은 시골이다). 그녀의 생활은 이와 같은 그녀의 배경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종종 이것과 저것 사이에 놓여 있다. 강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자주 울게 된다. 종잣돈을 모아 자기 사업을 하는 게 목표이지만, 빚을 내서 가슴 성형을 해야 하고 무리를 해서 고급진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스위스 유학 시절 당한 인종차별에 진저리가 나지만, 남자 친구는 꼭 백인이어야 한다.


남의 인생을 연기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얘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 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 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연기를 한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요즘 그녀는 영국에 있는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며 산다. 바이러스 시대를 살고 있어 떨어져 지내는 연인 신세가 되었다. 작년만 해도 그녀는 결혼은 서른 살 넘어할 거라고 하더니 지금은 원거리 연애 중인 영국 남자와 결혼을 꿈꾼다고 한다. 그 남자도 결혼하겠대?라고 묻자, 아직 그런 걸 물어볼 단계는 아니란다. 그래... 조만간 또 한 번 울음바다가 펼쳐지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때로는 엄중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조언을 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최소한 행동하는 사람이므로 도전하고 실망하고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배우게 될 것이다. 혹시 그런 식으로 배우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지금 내가 거든다 한들 아무 소용없다. 그녀는 그 버거운 무게를 지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아가게 될 테다. 오롯이 본인의 문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역시 비슷한 20대를 지났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싫을 만큼 치기 어리고 엉망인 시절이었다. 릴리와 양상은 다르지만 나 또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남을 연기하는 인생을 살았다. 정말 웃긴 점은 그때처럼 내가 인생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옳았기 때문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걸핏하면 싸웠다. 종종 말과 행동이 어긋났다. 그러면 자괴감에 빠져 울거나 남을 원망했다. 그녀를 보면서 아픈 순간을 느끼는 건, 나 역시 그런 한 철 보낸 탓이다.


어쩌지 못해 응원한다, 릴리. 나는 네가 울 때마다 위로해 줄 수는 없어. 그건 응석받이가 될 너에게도, 그런 너에게 지칠 나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잖니. 네가 나를 차가운 사람으로 느낀 대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너에게도 '나 참 별거 아닌 걸로 많이도 울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야. 그때는 정말로 깊은 대화를 해 보자. 네가 원하듯, 그 때라면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같이 일하는 동안, 제발 그런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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