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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Aug 15. 2021

락다운에 적응하는 중

그래도 욕은 나온다

한 달을 넘게 집에만 있다 보면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열심히 찾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음 한 주는 종일 욕을 달고 살았다. 따지고 보면 누굴 욕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긴 했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올라오는 걸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결국 백신 팔이로 돈을 벌어제낄 놈들을 욕하는 것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미국과 중국 욕해 봐야 내 목만 아프지만.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역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외부에서 운동은 물론 개 산책도 안된다는 16호 발령에 따라 거리는 사람 그림자 찾기가 어려웠다. 처음 며칠은 아침 6시쯤에 몰래 나가 5킬로씩 뛰곤 했는데 그러다가 주변의 신고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만두었다. 잡히면 '나 고혈압이라 코로나로 죽든 고혈압으로 죽든 이래저래 마찬가지다..'라고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오래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급히 홈트 앱을 구매해 봤다. 요가매트를 깔아 놓고 이틀을 따라 하자 허리가 아팠다. 그만둬! 마지막 수단은 계단 오르기. 바람을 가르며 뛰는 것 보다야 당연히 못하지만 어떻든 심박수를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긴 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35층 건물이다. 등산하는 마음으로 쉬엄쉬엄 오르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처음 며칠은 2회도 간신히 했는데 최근에는 3회도 가능해졌다. 100계단 이상을 오르는 것이다. 물론 숨이 넘어갈 때 즈음에 쉬어가기도 한다. 이게 산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여하간 궁여지책으로 운동은 해결을 했다.


3주 차를 넘어서자 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무엇에든 적응하기 마련이라 갇혀 사는 것에도 적응을 하게 된 것이다. 식료품 구매를 일주일에 2회로 제한하는 바람에 식료품을 구매한다는 핑계로 나다니는 것도 못하게 되자 자포자기하는 마음도 생겼다. 식료품 구매를 하러 나가는 그 이틀이 큰 행사가 되었다. 문제는 횟수가 제한되자 자연스레 사재기를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나뿐이 아니었다. 장을 보러 온 모든 사람들이 카트에 넘치도록 식료품을 담아 갔다.


집에 갇혀 지내자 생활의 패턴이 단순해졌다. 얼마만큼 단순해졌냐 하면 먹고 싸고 자는 일만 남게 되었다. 사회적 활동이라는 부분을 쏙 들어내자 남은 것들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누군가와 나누고 토론할 수 있을 때에야 동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하는 지적 활동에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은 한 편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것은 결국 지적 탐구심이라기보다는 지적 허영심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그 와중에 홀린 듯이 한 게 있다. 연필 드로잉이다. 한참 수채화에 홀려 있다가 이번에는 연필 소묘에 빠졌다. 연필을 들고 앉아 있으면 시간이 무섭게 빨리 흐른다. 그리고 결과가 남는다. 완성도와는 상관이 없다. SNS에 올린다.(역시 혼자만 봐야 했다면 안 그렸을지도 모른다. 죽일 놈의 허영심) 시간을 쓴 흔적이 남는다는 점에서 드라마 보기보다 낫다. 갇혀 지내는 마당에 효율성이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먹고 싸고 자는 일만 하는 중에도 시간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기는 싫다.


그럭저럭 적응한 와중에도 욕지기가 나오는 순간은, 이렇게 갇힌 채로 한 두 달을 더 지내야 한다는 예감이 사실이 되는 뉴스를 들을 때이다. 아직도 하루에 확진자가 몇 천명씩 나온다. 다들 갇혀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삼천, 사천 명씩 나오는 것이냐. 그런 상황이라면 도대체 락다운은 왜 하는 것이냐. 의미 없다면 풀어라!라고 하고 싶지만 나는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처지인 데다가 여기는 그랬다가는 잡혀 간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산책이라도 허락해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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