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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선생 Dec 20. 2023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 당신에게

임신은 축복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자연의 섭리일 테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히 원하고 바라던 순간이 찾아온 셈이다.


필라테스 센터 블로그에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글을 쓰던 중 과거의 사진이 필요했던 나는 구글 드라이브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8년 전 과거의 사진을 확인하게 되었고, 나와 아이들의 갓난쟁이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느꼈다.


나 자신에게 존경심이 들다니 누군가는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감히 나에게 '존경스럽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을 알고 있기에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할 수 있느냐 물어본다면, 솔직히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출산 후에 온전히 아이를 키우는 삶에만 집중하는 것이 벅찬 일이었지만 초보 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히 아이만을, 아이를 케어하는 일이 내가 수행해야 하는 많은 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당연하게 느껴졌고, 이전에 해오던 일을 사실상 한켠으로 밀어 두고 지금 주어진 육아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나는 무작정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로잡혔다. 겁도 없이 말이다. 


실제로 나는 아이를 낳고 펼쳐진 신세계 앞에서 육아를 성공적으로 잘 해내기 위한 관련 서적들을 읽어가며  수면패턴이라던지 모유 수유라던지 많은 초보맘들이 가장 힘들다고 여기는 부분을 꽤 잘 케어했었다.  

책에 적혀있는 이론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서도 다양한 위기상황들을 본능적으로 나는 잘 헤쳐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출산 후에 아이에게만 집중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육아 이외의 나와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부모라는 무게를 짊어진 남편과의 관계, 시댁과의 문제(그 시절 나는 시댁과 합가 하여 살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공감대라던지, 그리고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에 마구 휩싸이기도 했기에 그야말로 인생이라는 무게가 한 번에 얹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그것에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동안 외딴섬에서 한없이 웅크린 채 홀로 싸워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케어하는 일,  나는 외로운 나의 섬에서 가끔은 몰아치는 거친 파도와 태풍 안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리 휩싸이고 저리 휩싸인 채 버텨내고 있는 20대 시절 어린 나를 떠올려본다.

그 대혼란 속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 온 나. 그랬기에 지금의 나의 아이들, 그리고 나, 남편, 가족들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그 번데기 껍질을 힘겹게 뚫고 벗어난 나비처럼 한 단계씩 거쳐 성장한 모습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출산 후 첫째 아이가 6개월 일 때부터 일해온 나에게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지 일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떤 이는 내게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처럼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에 일을 시작해서 사서 고생하느냐는 말들을 듣지만, 나는 늘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고 싶어 하는 결핍 가득한 10대 그 어딘가에 멈춰있는 서른넷의 아이이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변화하고 싶다면 시도해야 하고 해내어야 한다.


육아를 하며 아이가 커가며 생기는 발달 과정에서 힘든 순간을 넘어갈 때면 한 챕터를 클리어하고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나는 지금도 '도전'이라는 벽을 앞에 두고 무모할지라도 부딪혀내고 때론 넘어가기도 하면서 또 한 챕터를 클리어해나가고 있다.

가끔은 힘들고 괴롭지만은 이 과정에서 겪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스무 살 초반, 무지했던 나는 '꿈'이라는 꽤 거창한 미끼를 덥석 물었고 그게 다단계 사기인 줄도 모른 채 나의 '꿈'을 빙자로 다른 이의 꿈마저도 미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천만 원 정도 사기를 당했을 때, 어린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든 사실을 가족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자신이 없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때려 맞아 죽더라도 사실대로 다 말하고 싶었다. 두려움에 발발 떨며 아빠에게 말씀드렸는데 예상과 달리 화내지도 않으시고 잔잔하게 나를 다독여주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그때의 내 선택은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 아마 혼나는 것이 두려워 계속 숨겨왔었다면 일시적으론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언제 들킬지 모르는다는 두려움과, 경제적 부담으로 휘청이는 20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지도 못한 결괏값이 오히려 정답이고, 지름길인 경우도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고를 쳤을 때, 예상치 못하게 그때 나는 아빠에게 처음으로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괜찮다. 네가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다행이다.
돈주고도 못할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라.
천만 원이라는 돈이면 싸게 배운 것이다.
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할지라도 오늘 새로 주어진 하루는 모두에게 처음이다. 지금도 흘러가버리는 이 순간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며 배운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괴로워했고 슬퍼하며 기뻐했다. 늘 완벽할 수 없고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늘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고, 어쩌면 그 마음이 나를 자주 괴롭힌대도, 부딪히며 긁히고 상처 나고 아물어가는 지금 나의 처음의 시간들을 응원한다.

내가 나에게 주는 응원과  용기들이 나를 멈추지 않고, 느리더라도 달리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 오늘도 힘내야지 다짐해 본다.


오늘도 공평하게 주어진 처음을 살아내는 나와 같은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모든 순간의 처음이 외롭지 않도록, 여기에 당신과 같은 나도 있다고 작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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