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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선생 Dec 20. 2023

무지개 같은 사람

내 친구 신디에게

삶은 예상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갑자기 노선을 바꿔 예상하지 못한 길로 나를 끌어들이곤 한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다고 하는 건가.


요즘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두 가지 모두 해당하는 게 당최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는 일에 꽤나 꽂혀있다.


좋아하는 것도 알겠고 잘하는 것도 알겠는데 두 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잘하는 일은 이미 잘하기 때문에 흥미가 사그라들어 금세 싫증을 내는 특성을 가졌다.

또 좋아하는 일은 내가 정해둔 ‘잘’의 기준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져 있다 생각하므로 진짜 잘하는 일이 되기도 전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다시 익숙한 것들을 찾는 걸 보면 어쩌면 정말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그런 일은 없는 게 아닌가 라는 결론을 짓게 될 때가 많다.

나는 가끔 충동적으로 어떤 일을 잘 벌리는 스타일인데 그중 하나가 바이크를 타는 것이었다.

애 둘을 가진 아줌마지만 그 아줌마라는 타이틀 때문에 원하는 걸 못하고 끝나버리는 삶은 암만 생각해도 꽤 억울할 것 같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해야겠다 결정지은 순간부터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일을 저질러 버리는 편이다.

(그렇게 저지른 대표적인 일이 바로 숨필라테스와 라라댄스다.)


맘에 드는 바이크도 샀으니 곧장 멋지게 쌩쌩 타고픈 마음이 있었으나 막상 혼자 타보려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도움을 요청할 이를 찾기 위해 바이크 카페에 가입했고,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여자사람을 찾기 위해 써치 하던 중 예사롭지 않은 그녀 신디를 발견했다. 

그 바이크 카페에서 신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였다. 


신디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느껴질 정도로  모든 면에서 예상불가 한 사람이었다. 색으로 따지자면 일곱 빛깔 무지개. 그만큼 매력이 다양하다.

나보다 한두 살 어리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온 나라, 환경, 언어 그 모든 것이 정 반대이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다. 어째서 그렇수 있을까?


처음엔 그게 낯설고 어색해서 항상 만날 때마다 난 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다. 통통 튀는 그녀를 소화하기에 내 속도는 조금 느렸기 때문이다. 바이크 속도도, 그녀를 받아들이는 면에서도 말이다.

보기엔  안 그래 보일지라도 꽤 낯을 가리는 내 입장에선 지나가는 사람, 동물, 자연, 심지어 쇳덩어리인 바이크까지 그 모든 것과  인사하고 절친을 맺는 그녀가 놀랍도록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방금 만난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다음약속을 잡는 게 가능하다고? 


우리는 달랐지만 좋아하는 아이돌,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바이크가 같았다.


달랐지만 한편으론 같았기에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곳들을 그녀와 함께 달렸다.

후텁지근한 여름밤 야경이 아름다운 한강을 달렸고, 가파른 오르막에 구불구불 북악산을 덜덜 떨면서 따라 올랐고 또 봄날, 흩날리는 벚꽃길을 함께 달렸다.


바이크를 탈 때면 늘 긴장해서 대답도 잘 못하고 열심히 따라만 다녔는데도 신디는 나를 짐처럼 생각하거나 귀찮아한 적이 없었다. 탈 줄만 알지 세차를 할 줄 몰라 물만 대충 찌끄리는 나를 보며 두 번이나 내 바이크를 시간 내서 직접 세차해 주었을 만큼 나를 위해 귀찮은 일들을 기꺼이 해주었다. 세차에만 장장 4시간을 투자했다.

그뿐만 아니라 만날 때면 언제나 크고 작은 선물을 건네는 그녀였다.

나는 이제 바이크를 처분해서 같이 탈 수 없고, 또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수개월만에 신디를 만났다.

여전히 자신을 꼭 빼닮은 주황색 베스파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왔다 이 날도 신디는 나를 위해 꽃과 아이들 선물까지 챙겨 와 주었다. 선물도 고맙지만 그보다 그 마음이 곱절로 더 고맙다.

받은 만큼 표현을 잘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신디는 비가 내릴 때도 해가 쨍쨍할 때도 보이진 않지만 어디선가는 피어있을 무지개 같다. 

자주 볼 수 없지만 가끔 만나게 될 때면 보는 것 만으로 미소가 지어지고, 이내 그 하루가 특별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신디가 내게 말했다.

도전을 좋아하니 도전을 멈추지 말고 그 안에서 잘하는 것들을 찾아보라는 말. 그 말이 내가 듣고 싶었던 정답이었을까.

너무 완벽하고 싶은 나머지 실패할까 두려워 가끔 시작을 망설이는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이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낼 때까지 많은 도전을 해볼게!

도전하는 것 새로운 일을 하는 것, 꼭 잘하지 않아도 그냥 해보는 것!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도전 속에서 신디를 만났으니까!


어쩔 땐 계획했던 것보다 더 최악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결과적으로 최상으로 결과로 마무리 지을 때가 있다. 

내 삶의 방향키는 나의 의도와는 가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 정도면 꽤 순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즐겁게 살아가자. 유영하듯 흘러가듯. 결국엔 어딘가에서 멋진 섬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


내게 멋진 돛을 선물해 주고 간 신디 고마워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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