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문집 0002 |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는 말이 도무지 공감되지 않았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지만 책을 읽으며 느껴봤던 감정들은 많았다. 공감, 수긍, 재미, 호기심, 안도 등. 하지만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의 가치관이나 일상에 큰 영향을 준 적도 없었고 그저 1년에 몇 번 하는 취미활동 정도였다.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건 요즘 내가 챙겨봤던 드라마 마지막 회를 시청한 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 드라마 정말 미쳤네... 재미있었다. 이제 또 무슨 드라마를 봐야 하나?" 새드엔딩으로 끝난 주인공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다음 드라마를 물색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가 봤던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 줄거리 등은 서서히 잊혀 간다. 나에게 책은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봤으면 땡
그런데 좀 센치했던 올 해에는 생각이 많이, 아니 완전히 바뀌었다. 친구가 선물해 준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스스로한테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고,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장바구니에 담았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나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게 했다. 이 2개의 책들의 시너지로 나는 좀 더 단단해졌다. 복잡했던 머릿속과 마음에 서서히 위로가 됐고, 그 위로는 흔들렸던 내 자존감을 다시 지탱해 주기에 충분했다. 이 과정 중에는 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항상 내 편이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도 처음으로 고민해 봤다. 고민에 대한 대답이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에는 (조금 과장해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며 언제쯤 대답이 완성될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무엇을 원할까?, "나와 나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 마음, 서로 통했다는 안도감, 말이 오가는 중에 느껴지는 깊은 우정과 위로도 원한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원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에 적혀 있던 말들이 내가 생각한 방향과 같을 때, '이 사람도 나랑 같구나'하며 공감하고 안도한다. 살아가면서 하는 수많은 행동과 생각들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감히 판단할 수 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물론, 지지가 많다고 그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냥 속으로 기분 정도는 좋아져도 되니까? 내 마음이고, 내 생각인데 뭐) 또 직관적인 문장들로 직접적인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말이지만 나는 해본 적 없는 말이고, 누군가한테도 듣기 힘든 뼈를 때리면서도 위로가 되는 말들이 있다. 다 다른 생김새의 문장들이지만 하나 공통적인 건 결국 모두 '괜찮아'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거였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마음속에 듣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렇게 말해줄 사람(책)이 필요했고
운이 좋게 그 사람(책)을 만나
듣고 싶었던 말을(글을) 들음(봄)으로써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건,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는 게 아닐까?
이제 나도 말할 수 있다.
책에서 가끔 위로를 받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