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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의 힘

생리 전 증후군

극한의 우울감.

어제 결국 자기 전에 혼자 베개를 적셨다.

느닷없이, 끝도 없이

'왜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수고롭게 하고 있는 거지?'

'아, 이런 마음 털어놓을 곳도 없다니. 헛살았다. '

'너무 외롭네.'

이러다가 눈물이 줄줄.

깜깜한 밤에 모로 누워

어차피 쿨쿨 잠들어 눈치채지 못할 남편을 등지고 눈물만 조록조록 흘리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생각했다.

'이 정체모를 우울감은 

내일도 계속될 것 같고 내 시간을 몽땅 잡아먹을 것 같은 우울감은

설마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아침에 화장실에서 확인했다.

그날이다.

'결국. 그런 거였어? 난 호르몬의 노예일 뿐인 건가'


고등학교 시절

둘째 오빠랑 중국집에 갔다.

오빠가 물었다.

" 짬뽕 먹을래, 짜장 먹을래.  볶음밥 먹고 싶어?"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그런 걸 뭐 그렇게 다짜고짜 물어보고 그래?!"

그러면서 울어버렸다.


이 얼마나 황당한 시추에이션.

그다음 날. 나는 그날을 마주했다.


대학교 시절

연애하던 남자 친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낸다.

커다란 가나 판 초콜릿이다. 제일 큰 사이즈.

종이 껍질을 벗기고 반짝이는 종이까지 반쯤 벗긴 후에 내입에 물려준다.

"오늘 종일 짜증 내는 거 보니까 내일 백퍼야. 지난번에 보니까 초콜릿 먹으니까 좀 낫더라. 너"


남들도 눈치챌 정도로 나는 호르몬에 휘청거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생리통은 어릴 적에는 배, 결혼 초기에는 허리, 지금은 전신과 두통으로 변형되고 있는데

생리 전 증후군은 한결같이 '우울감'이다.

한 3년 전부터는 불면증도 더해지긴 했다.


블로그를 뒤적거리다가 우울하고 슬프다고 적은 날들을 보니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십중팔구  달이 기울던 그날 즈음이다.


우울함이 진짜 나의 우울한 상황 때문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이렇게 한 달의 한번 감정의 변화를 얼마인지 그 양도 모를 호르몬 때문에 겪는 것을

기분 나빠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냥 넘길만한 정도가 아닌 것으로 보아


이 땅의 많은 여자들을 대변하고 싶어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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