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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Grace/Kegyelem

아빠가 막둥이로 태어난 내 이름을 은혜로 지으셨을 때 ‘값 없이 받은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했다. 살다보니 그 이름의 뜻이 너무 좋아 나는 내 딸의 이름에도 ‘은혜’를 넣었다.


헝가리 생활 3년차쯤 “은혜씨가 은혜를 이렇게(못마땅함을 넘어서 원수로) 갚을 줄 몰랐네”라는 말을 들었었다. 아마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던 그 분은 내가 그 다음으로 그 분께 했던 행동들이 예상? 밖으로 부족한 반응으로 느꼈고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하셨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주에 난 몇번을 ‘어쩜 저 사람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도대체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네’.‘내가 어떻게 했는데....’라고 몇 번을 중얼거리는 중이다. 몇일전에 이 손가락으로 이해못할 사람이 없고 이해되지 못할 상황은 없다고 써놓고 이러고 있는 내가 참 별로다. 진짜. 쩝...


게다가 내가 그랬듯이 그 상대방은 ‘내가 도움을 받은 건 맞지만 그냥 나에 대한 호의로 그 사람 마.음.대.로. 나에게 준 도움일 뿐이었고 나는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제법 잘 표현하지 않았나? 그거면 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거라는 걸 알기에 서운함이나 화남이 아닌 씁쓸함으로, 내 마음가짐이 문제라는.그 누구탓도 할수없다는 결론이 이미 나버렸다.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은혜’라는 단어로 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아빠의 말씀대로 ‘은혜’라는 것은 값이 없는 선물인데 값어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사람이 값을 매기지 않고 계산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준 선물이기에 갚을 길도 없고 갚을 수도 없는 선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대부분 도움을 주는 사람은 줄때는 이 도움은 댓가없는 ‘은혜’라고 생각하면서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고 도움을 받는 사람도 일단은 가격이 없는.갚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감사만 표현하면 되는 일종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아이러니 하게도 선물을 받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감사만 표현하고 댓가에 대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만큼(값)의 반응을 하지않으면 선물을 줬던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구나 라고 까지 생각할 만큼 괘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그렇듯이.그 때 그분이 그랬듯이.



이런기분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떤 도움을 줄 때 함부로 ‘은혜’를 끼치는 것 같은 고귀한 자세로 전하는 착각을 말것. 정확하게 이건 값이 매겨진 도움이라고 상대방에게 알려줄 것.


ㅡ만약 진짜 ‘은혜’를 입게 하고 싶다면 정말 값을 매기지 말고 그 어떤 피드백도 기대하지 말 것


ㅡ그리고 내가 어떤 도움을 받을 때 그 도움은 ‘은혜’인지 , 그냥 ‘도움’인지 구분하고 잘 대응할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글을 쓰면서 알았다. 내 인생 40년 진실한 은혜는 부모님 은혜와 어메이징 그레이스 (from God)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만약 어떤 사람이 댓가 없이 다른이에게 은혜를 입게 했다면 그는 성인이라 불릴만큼 어려운일을 한것이며.혹 그 은혜를 입은 이가 그걸 갚아냈다면 (갚을 수 ‘없는 게’ 은혜지만) 은혜갚은 까치처럼 입에서 입으로 그 미담이 세대를 걸쳐 전해질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함부로 은혜를 입에 담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흠..,그치만 이글을 쓰면서 내 서운했던 마음들이 꽤 잠잠해졌다.(어제 맘에안드는 남편 도착소식 기다리며 졸며 눈뜨며 썼다가 날려먹어서ㅎ 다시쓰느라 좀 더 잘 정리되는 시간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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