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보다 더 힘들었던 재활 과정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인공호흡기를 드디어 제거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큰 산 하나를 넘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아니 이게 무슨 일 인가? 목소리가 안 나왔다.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목소리가 나오긴 나오는데 아주 미약하게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쇳소리와 함께 작은 소리만 낼 수 있었다.
바로 이비인후과에서 협진을 진행했고 알고 보니 인공호흡기가 들어가는 과정에 성대가 손상이 되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고 이는 보통 1~2주 이내에 자연스럽게 복구가 된다고 하였다. 이런 경우는 수술 후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자연복구가 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정상적인 회복을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모든 수술이 다 동일하겠지만 특히 심장 수술 같은 경우에는 수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술 후 재활이다. 의사는 우리 몸을 치료하기 위해 최대한의 도움을 주지만 어떤 명의라도 완벽한 치료는 결코 할 수 없다. 건강을 악화시키는 것도 본인이지만 건강을 다시 찾게 하는 것도 본인이다. 나는 수술 후 입원 기간 동안 펼쳐질 재활의 싸움을 시작했고 중환자실에서의 나의 첫 싸움은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입맛이 없을 수가 있다니 음식을 보는 것조차 싫었다. 처음 음식은 죽이 나왔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회복을 하려면 뭐라도 억지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수술 후 회복에 있어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지만 죽 조차 넘기기 힘들어서 죽을 먹고 물을 마셔 억지로 먹었다. 그렇게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2-3시간 뒤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속이 좋지 않아 구토를 했다. 억지로 먹고 먹은 죽을 다 게워냈는데 내가 갑자기 구토를 한 원인은 마약성 진통제에 부작용 때문이었다.
흉골을 가르고 심장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 후 통증이 엄청나게 심하다. 그래서 수술을 하고 나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는데 어떤 버튼을 환자에 손에 쥐어 주고 환자가 통증이 심할 때마다 버튼을 누르면 마약성 진통제가 자동으로 투여되어 통증을 조절해준다. 그러나 난 그 마약성 진통제에 부작용이 있었던 모양이다. 진통제를 투여하니 바로 어지럼증이 느껴지면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마약성 진통제 투여를 중단하고 통증이 있을 때마다 간호사를 호출해 일반 진통제 주사를 맞기로 했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이틀 정도 생활 후 3일째 되던 날 일반 병동으로 내려갔다. 일반병실로 내려오고 나서 나의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두 번째 싸움은 바로 걷기 운동이었다. 의료진 분들은 수술을 받고 나면 폐가 쪼그라들어 있어서 수술 후에는 이 폐를 펴주는 행위를 해야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운동이 걷기 운동이다. 그리고 흡입기 기구로 숨을 크게 흡입해서 공을 들어 올리는 기구로 폐를 펴주는 운동을 진행한다.
처음에 병실에 내려오고 걸으려고 할 땐 정말 너무 당황스러웠다. 진짜 농담 아니고 열 발자국도 못 걸었다.
내 병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게 정말 큰 일이었다. 앉아있다가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고 숨이 찼는데 이런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나와버렸다. 뭔가 내 심폐기능이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난 첫날은 무조건 병실 복도에 한 바퀴 돌기를 성공하자 라는 생각을 했고, 그다음 날은 2바퀴 다음날은 3바퀴를 돌자는 목표를 세웠다. 다행히 나는 젊어서 회복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물론 힘들었지만 꾸준히 병실 복도에서 하루에 수십 번씩 걷기 연습을 했다. 그만큼 병원에 한시라도 있기 싫었고 퇴원이 너무 간절해서 운동을 더 열정적으로 했던 것 같다.
운동의 신비함을 느꼈던 것은 내가 걷기 운동을 하면 할수록 몸 상태가 급격하게 회복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많이 아프긴 했다. 그만큼 큰 수술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고 나 역시도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것과 동시에, 빈혈. 어지럼증 두통이 너무 심해 2차례 수혈을 진행하였다.
수술부위에 통증은 수술받는 이들 모두 통증이 심해 마약성 진통제를 달지 않으면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지만 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고 있음에도 수술 부위 통증은 심하지 않았고 충분히 견딜만한 통증이었다.
일반 병동으로 내려오고 난 후 3일 뒤에 흉관 기계를 빼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뻐했다. 흉관이란 수술 부위에서 발생하는 출혈을 바깥쪽으로 배수시키는 역할을 한다. 심장 수술은 특성상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는 어느 정도 출혈이 불가피한데 이 피가 가슴에 고이게 되면 심장을 누르게 돼 심하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어 모든 심장수술 환자는 수술 직후 흉관을 가지고 나오게 되고 의료진은 출혈 상태를 지켜보다가 더 이상 출혈 위험이 없다 판단될 경우 흉관을 제거한다. 이 흉관을 달고 움직이는 게 정말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몸에 이것저것 달려있는 것 중에 가장 불편한 놈이었는데 흉관을 제거하자마자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흉관을 제거할 때는 흉관을 몸에서 빼고 구멍이 나있는 상처를 스테이플러로 집는다.(마취 없이) 엄청나게 고통스럽지만 이것도 꾹 참다 보면 참을만하다.
흉관도 제거했겠다. 이제 퇴원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수술 후 정말 과장 없이 약 15-20종류의 약을 복용했는데 정말 간이 걱정될 정도였다.(물론 간을 보호해주는 약도 같이 복용했다) 그 약 종류도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지나니 10종류 정도로 줄었다. 걷기 운동도 혼자서 병동을 10바퀴 이상 걸어도 문제없을 정도로 몸도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복되었고 작게나마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수술받고 약 10일 후 퇴원을 했다.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행복해했던걸 보니 10일간의 병원생활이 꽤 힘들었던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