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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솔 Oct 21. 2021

수술받는 날

대망의 판막 수술



수술 날짜가 나왔다. 2020.10.19일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고 당시에 의료파업 이슈가 있어서 여유 있게 약 2개월 뒤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술 집도는 대한민국 선천성 심장질환 수술로 명성이 아주 높으신 교수님께서 수술을 집도하게 되었다. 



나는 그 뒤에 다니고 있던 직장을 퇴사했다. 수술을 받고 나면 회복하는 기간도 필요하지만 당장 현재 무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몸 컨디션은 아니었다. 부정맥은 안전하게 잘 제거되었다 해도 이전에 그랬듯 언제 다시 재발이 될지도 모르는 부분이었고, 무엇보다 청색증과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체력이 방전되고 몸이 무거운 느낌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수술받기 전 이 휴식기 기간에는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혼자 바다도 가고, 옛날에 살던 동네에 가서 산책도 하고, 독서를 시작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기를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진짜 약해진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화가 많아졌고 불만이 많아졌을까? 언제부터 나는 기분이 안 좋은 날만 술을 마신 걸까?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우울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존감은 이렇게 바닥으로 내리쳤을까 여러 가지 나에 대한 질문이 있었지만 단 한 가지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어린 시절 내가 생각해도 참 밝고 맑은 아이였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좋아해 주셨고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려 더 이쁜 짓을 골라했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슈퍼마켓 가게를 했는데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가게 문을 직접 열어 가게를 보기 시작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싫어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한 순둥이였다. 그런 난 크면서 정확히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의 마음은 초등학생 시절보다 더 어려 보였고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현재 이런 약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려고 했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더럽게 높은 사람이라 그동안 내가 이렇게 약해졌다 라는 것조차 인정하기 싫어했었던 듯하다. 그때 처음으로 나를 조금씩 바꾸는 인생을 살 것이다 라고 다짐했다.



2020.10.18일 대망의 수술 전날 오후 입원 수속을 밟고 난 후 수술 전 어떤 수술을 어떻게 할지 설명을 받았다. 일단 판막은 내 판막을 살려서 최대한 판막성형술로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넣게 되면 혈전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평생 와파린이라는 피를 묽게 해주는 약을 먹고살아야 되고 와파린은 약의 부작용도 꽤 많은 편이라 많은 불편함이 생긴다. 판막성형술로 시도를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는 경우에는 인공판막으로 판막치환술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말하셨고, 심장에 구멍도 있기 때문에 구멍을 막는 수술도 동시에 진행한 뒤 마지막으로 부정맥을 시술로 제거하긴 했지만  더 부정맥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수술까지 진행해 총 3가지 수술을 한꺼번에 진행한다고 말하셨고 수술시간은 5시간 정도 예상된다고 하셨다.



수술 당일이 다가왔고 오후에 수술을 들어간다고 했다. 전날까지 별다른 긴장을 하지 않았던 내가 당일이 되니 미칠 듯이 긴장이 됐다. 차라리 시간이 빨리지나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가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름이 불려졌고 나를 수술실로 데리고 이동했다. 엄마랑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마취과 의사분들과 간호사로 보이는 분들이 준비를 하고 계셨고 수술실 안은 정말이지 너무나 추웠다. 마취과 의사가 나의 이름과 나이 어떤 수술을 받는지에 대해 물었고 산소라면서 숨을 크게 쉬라고 산소호흡기 같은 것을 입에다 끼워줬는데 시키는 대로 숨을 크게 쉬자마자 기억을 잃었다.



눈을 뜨니 중환자실이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가 묶여 있는 상태였다. 비몽사몽 한 정신에 간신히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어 말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 인공호흡기가 정말 고통스러움의 끝판왕이었다. 틈만 나면 목에 가래가 껴서 그럴 때마다 간호사가 내 목에 기구를 넣어 가래를 빼주고 인공호흡기를 다니까 숨조차 제대로 쉬는 게 너무 어려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잠깐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것도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1-2주 넘게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시는 분들도 많이 있어 그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수술은 다행히 아주 잘되었다고 하고 인공호흡기도 5-6시간 정도 뒤에 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묵묵하게 그 시간을 조용히 버티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숨을 크게 쉬었는데 그 공기를 잊지 못한다. 정말 숨을 편히 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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