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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Apr 15. 2021

엄마, 할머니댁에서 저녁 먹어요.

"엄마, 오늘 할머니 댁에 가서 저녁 먹어요."

"그럴까?"

"네, 제가 할머니께 저녁에 찾아뵙는다고 말씀드릴게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둘째 아이가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매일 하는 일이 아니라 보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 생애 첫 월급을 받았다며 신기해했다.


"엄마, 생각보다 급여가 얼마 안 돼요. 일 할 때는 엄청 힘들었는데요."

"돈 벌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태어나 처음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은 아이는 '노동의 대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아이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궁금했다.


사고 싶었던 것도 사고 자신의 용돈으로 쓰겠지 했는데,  할머니 댁에 찾아뵙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저녁을 사 드리고 싶다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특히 둘째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각별한 편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라서인지 둘째 아이는 정이 많고 따뜻하다.

고등학교 시절 버스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에 가끔 할머니 댁에 들러 할머니 할아버지와 밥을 먹고 오기도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거절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가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고집을 피우다가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류하는 일은 대부분 수긍하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둘째 아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셨다.

항상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아이를 봐주시니 대학생이 돼서 처음 받은 '노동의 대가'를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쓰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 제가 음식 주문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둘째 아이가 이미 음식을 주문했다.

부모님께서는 손주가 힘들게 번 돈으로 사는 저녁을 먹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아버지, 오늘은 **가 사는 저녁 그냥 드셔 보세요."

"아이고, 내가 어떻게 이 녀석이 고생한 돈으로 사는 저녁을 먹겠니?"

"오늘은 그냥 드시고 다음에 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주시면 되죠."


그날 저녁 부모님은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저녁을 드셨다.

아마 음식보다 맛있는 손주의 사랑이 그 무엇보다 따뜻한 저녁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예상치 못한 조산 때문에 저체중으로 세상에 나온 둘째 아이가 벌써 스무 살이 되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이제는 할아버지보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굵은 청년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훌쩍 커버린 키만큼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함께 커졌다.


아이가 커버린 만큼 부모님은 나이가 드셨고, 손주를 돌봐주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이제는 훌쩍 커버린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저녁을 대접해 드리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부모님은 나이가 드시고 아이는 커나가겠지만, 잡을 수 있다면 부모님의 시간만큼은 잡아 붙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앞으로 손주가 취직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게 부모님께서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소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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