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3
엄마는 무슨 일 할 거야?
어린이집에 다녀온 딸아이가 물었다.
여섯 살의 눈으로 보니 친구들의 엄마는 회사에 다니거나, 간호사이거나, 가게를 꾸리며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은데 딸아이에게 나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엄마도 집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 하고 동생 돌보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대꾸했지만 딸아이의 눈에는 그저 시시하고 당연하고 별 볼 일 없는 일들인 것 같았다.
내가 학교에 가면 동생 밥도 주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할 테니까 엄마는 엄마 일 해.
엄마가 일 했으면 좋겠어?
딸아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둘째가 이제 막 이유식을 뗐고 어린이집에 맡기기도 어려서, 딸아이처럼 다섯 살 때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돌보다가 일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벌써 등을 떠밀고 있다.
막상 일을 하긴 해야지, 했지만 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내가 다시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툰 육아와 살림이 전부이고, 결혼 전에 했던 일이라곤 다큐를 찍는다고 잠시 열정 앓이를 했던 것과 문화원에서의 근무가 전부였다. 육아로 단말마 같던 경력이 끊긴 아줌마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을까.
결국 아르바이트 앱에 들어가서 재택근무며 단기 알바 같은 검색어를 찾다가 편의점, 식당, 피시방에 이르자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딸아이가 말하는 일이 이런 것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 엄마가 잘할 수 있는 일, 우리 엄마가 한다고 자랑할 수 있는 일 일 테니.
그래서 얼마 전부터 조금씩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둘째가 낮잠 잘 때나 체력이 조금이나마 남은 저녁, 그 흔치 않은 여유시간에 드문드문 선잠처럼 글자들을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흐름은 끊기고 앞과 뒤의 간극이 생기고 자꾸만 생각이 멈춰졌다.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을 만큼 그저 글자 잇기에 여념이 없는 내가 가끔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나마 이것뿐이라는 것을. 흩어져가는 정신들을 겨우 붙잡아가며 기억을 더듬어서 끝이라는 마침표를 굳이 찍으려고 하는 건 언제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친정 같은 글쓰기뿐이니까.
언젠가는 시작하려고 했었다. 경험도 많고 생각도 깊어지면 무엇이든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두려워서 미루고만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흩어져버릴 글자들처럼 나도 그럴까 봐. 어설프지만 지금 시작해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당장, 그리고 훗날, 비록 무언가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엄마로는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