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5
티브이 속 영화배우가 잘 만든 영화라며 추켜세우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영화였다. 그런데 혼자 보는 내내 눈물인지 서러움인지 외로움인지를 꾹꾹 삼켜가며 보느라 영화가 끝나고도 먹먹한 마음에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거긴 미국 LA이고, 여긴 한국의 지방도시이고, 여자는 스칼렛 요한슨이고 나는 평범한 아줌마인데, 왜 감정이 이입되고 저 영화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감정이 요동쳤을까. 비슷한 거라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다는 것과 여자가 LA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도 내가 살던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그뿐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스칼렛 요한슨이 되어 아담 드라이버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이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두 사람의 대화 장면에서 마치 누군가 우리 부부의 일상을 훔쳐보고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남편과 나도 제대로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을까. 무언가 진지하게 대화를 하려고 하면 남편은 도망치거나 회피했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진지한 내 마음 따위, 심각한 내 상황 따위를 꺼내봤자 남편의 입장에선 어리광에 불과한 투정일 터였다. 그렇게 알아주지 못한 마음을, 위로받지 못한 상처들을 깊이 묻고 덮어두며 모른 채 살았다.
남편은 올해 회사로부터 대학원 진학을 권유받았다. 그러면서 인맥을 쌓기 위해 새로운 운동도 시작하고 싶어 했다. 남편은 이미 결혼 전부터 사회인 야구를 오랜 취미로 해오고 있었다. 결혼을 약속하고 남편은 일요일에 딱 두 시간만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그때의 난 호기롭게 두 시간쯤이야, 하고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겨우 그 두 시간 때문에 나와 남편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두 시간은 다섯, 여섯 시간이 되기 일쑤였고, 시작이 일정하지 않아 온전히 일요일 하루를 날려 보내야 했다. 하루에 단 30분도 나를 위해 쓸 수 없는 나날을 살다보니 남편의 두 시간이 얼마나 큰 지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 후 낯선 타지에 자리 잡고 갓난아이를 홀로 돌보며 모든 게 서툴고, 모든 게 힘들고, 모든 게 어려웠다. 남편은 내가 이곳에서, 이 삶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 책임의 무게가 버거웠던지 오히려 나를 못본 척 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래서 내가 대화를 요구하거나 위로를 바랄 때면 외면하거나 뒷걸음질 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남편과 나는 기본적으로 성향이며 성격이 전혀 달랐다. 겉으로는 둘 다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남편은 뜨겁고 열정적인 마음을 숨기고 있고, 나는 차갑고 냉소적인 마음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남편은 이성적인 판단을 추구하고, 나는 선택 앞에 감정이 우선시 되었다. 남편은 운동이나 게임을 좋아하며 활동적이지만, 나는 책이나 사색을 즐기는 집순이다. 남편은 입맛이나 냄새에 예민하고 까다롭지만, 나는 가리는 음식이 없고 웬만하면 다 잘 먹는다. 남편은 눈치나 상황 판단이 빠르지만, 나는 눈치도 없고 둔한 편이다. 열거해놓고 보니 대체 어떻게 살았나 싶다. 아니, 대체 어떻게 만나 사랑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은 서로 다른 면에 끌리고 자신에게 없는 상대의 모습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던가. 하지만 결국 그 다름 때문에 싸우게 되고 헤어지게 된다고.
앞으로 몇 년이라고 했었다. 아이들이 금세 커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고 할 때가 고작 몇 년 안에 올 거라고. 아이들이 부모를 필요로 하는 이 시기만큼은 함께하자고 했었다. 아마 이 말도 잊어버렸겠지. 아이들이 부모를 필요로 하는 이 시기가, 내게도 당신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는 걸. 그래서 더는 남편을 붙들거나 이해시키지 않기로 했다. 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함께 해달라고 설득하는 게 역설처럼 느껴졌다. 그런다면 남편은 말하겠지. 내가 가족들을 위해 함께 하지 않은 적 있느냐고…….
물론 남편이 지고 있는 가장의 무게와 녹록하지 않은 사회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무게의 차이가 그를 힘들게 한다는 걸 안다. 그 위태로운 저울질 속에 남편이 가진 무기라곤 회피와 침묵이 주는 시간의 해결이라는 것도. 하지만 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보다, 어떤 모습일지 짐작할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나를 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항상 이곳에 대해 말하지만, 남편은 항상 저곳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요즘 부쩍 자신이 아기였을 적 사진과 동영상을 자주 들여다보는 딸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동영상 속 딸은 내가 “엄마”라고 말해도 “아빠”라고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딸은 어렸을 때 남편을 무척 따랐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고부터 둘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았다.
“아기였을 땐 아빠를 더 좋아했었는데…… 지금도 그래?”
“지금은 좀 어색해. 아빠랑 있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큰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걸 느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렵다. 내가 느껴온 결핍을 아이들도 느끼게 될까 봐. 그리고 아이들이 더 이상 아빠를 찾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그제야 여유가 생긴 남편이 아이들을 찾게될까 봐.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도 어긋날까봐 두렵다.
결혼은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환상동화의 해피엔딩,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모든 동화가 거기에서 끝이 나있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환상이 현실로 변하는 순간 더 이상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혼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게 진짜 결혼이야기는 매번 가파르고 날카로운 덤불로 뒤덮인 산을 하나씩 넘는 것만 같다. 넘을 때마다 새로운 산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다시 넘어야 하고, 구르고 상처입기도 하지만 다시 나아가야만 하는 길고도 긴 여정의 이야기. 언젠간 여유가 생겨 주변 풍경을 둘러보기도 하고 그 과정을 즐기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아프고 아픈 성장의 이야기일 뿐이다.